'퇴행'과 '승화'에 대한 적절한 경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사진 활동’에서 겪은 '퇴행'과 '승화'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고 계시듯이 저는 사진으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가 원하는 사진을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순수 사진'에 대한 '좌절'을 느낀 후, 저는 '퇴행'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직 그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좌절'후 퇴행을 겪고 있고, 온전한 '승화'를 통해 좌절을 극복하진 못했습니다. 다만, ‘상업 사진’과 ‘사진 교육’ 그리고 ‘사진 치료’라는 부문으로 접근하면서 ‘순수 사진’에 대한 억눌린 응어리를 분출하고 ‘승화’ 해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퇴행 과정에서 ‘승화’의 경험을 굳이 찾는다면, ‘순수 사진’의 응어리를 ‘상업 사진’에 분출하여, 비교적 성공적인 ‘상업 사진작가’로 '승화'시킨 것과 ‘사진 교육’이란 영역에서 제법 활발히 활동하고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 과정에서 얻은 '승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승화’라기보다는 경제 용어를 빌려서 말하면 일종의 피봇(Pivot)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수 사진’을 궁극적인 목표로 오픈한 비즈니스지만, ‘사진’을 중심점에 두고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에 맞추어 ‘상업 사진’과 ‘사진 교육’으로 피보팅(Pivoting) 해서 매출을 확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치료’ 역시 다음 단계로 읽어낸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한 일종의 피보팅(Pivoting)으로 생각됩니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되겠죠.
결국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보면 ‘순수 사진’에 대한 갈증을 조금 다른 모양새지만 성공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승화’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직 마음속에 진정한 ‘승화’는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의 ‘순수 사진’은 승화가 아닌 그 자체를 다시 직면하여 진정한 의미의 ‘좌절의 극복’만이 개인적으론 온전한 ‘승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맛본 ‘좌절’과 겪고 있는 '퇴행'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진 강의할 때,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사진은 시작이 중요합니다." "사진을 시작했던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시작하는 지금을 잘 기억하세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말은 사진엔 초급/ 중급/ 고급이 따로 없음을 응원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퇴행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공부하고 작가로 활동한 지 10년쯤 될 때였습니다. 상업 사진 학교에서 사진 기술을 배웠고, 국내 최고 연예인들을 찍을 만큼 성공적으로 10년쯤 상업 사진 현장에서 치열하게 매진했으니, 사진 기술에서만큼은 자타공인 전문가였죠. 그런데 그렇게 내공이 차올랐을 때쯤 저는 학교 다닐 때 과제물로 제출했던 필름 사진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고, 그때 촬영했던 많은 습작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난 이제 더 이상 이런 사진을 찍을 수가 없는 건가!’라는 생각에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충만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더 이상 찍을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충격을 받았죠. '무학의 통찰'을 경험하려면 배움이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기술적인 기교를 부릴 수 없는 자동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퇴행’을 겪었고, 사진 강의할 때 ‘저는 사진을 시작한 처음 그 지점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에, 기술적인 충만을 표출하고자 한 것인지, 아니면 프로 작가의 덧없음을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 처음 그 지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었는지, 혹은 순수 사진에 대한 응어리의 분출이었는지, 인간의 가장 순수한 때인 ‘아기’를 주제로 한 ‘아기사진’ 실용서를 출간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작품으로 명확하게 만들어낸 것이니, 제가 겪은 ‘좌절’을 책출간으로 '극복'하여 '승화' 했다고 억지로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책 출간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매출을 목적으로 책을 출간한 것은 아니므로, 비즈니스적 관점의 피보팅(Pivoting)과는 구별해서 ‘승화’라고 억지로 말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형식적인 '승화'는 경험한 듯 하지만,
'승화'라는 개념으론 '순수사진'에 대한 저의 '좌절'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없고,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순수사진' 그 자체를 직면하고 '순수사진'을 직접 행하는 것이 저에게만큼은 진정하고 온전한 '승화'일까요?
전 그래서 여전히 사진을 시작했던 그 지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퇴행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