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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Oct 30. 2023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

저는 역전이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합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향한 자발적 투사가 일어나는 경우와, 내담자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사례를 자신의 이야기와 일치시키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역전이를 생각합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분석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사례와 유사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공감하는 것은 역전이의 긍정적 외적 활용이 되어, 내담자에게도 공감에 대한 신뢰감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상담자가 자기 경험을 기준으로 예견하여 내담자에게 출구(해답)를 알려주는 행위는 ‘분석적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한 부정적인 역전이가 될 수 있습니다. ‘개별적 특수성’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상담자의 자기 경험은 유사할 뿐, 내담자의 그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역전이 현상을 잘 활용하는 것은 내담자의 상황을 함께 직면하고, 공감하며, 해석하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간접 역전이

개인적으로 제가 붙인 이름이지만, ‘간접 역전이’의 외적 활용도 가능해 보입니다. 상담자 본인의 내적 갈등을 내담자에게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내담자 혹은 지인의 사례를 통해 공감한 내용을 치료 목적으로 역전이 된 것처럼 가장하여 외적 활용 (해석, 직면, 공감)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기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거짓으로 공감해서는 안 되며, 진정성이 필요하겠습니다.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몰입한 연기', '진정성 있는 연기'를 떠올려봐도 좋겠습니다.




개인 경험 사례

사진 교육할 때 역전이가 종종 일어납니다. 먼저 걸어온 길인 만큼 교육생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하고,‘ 내가 겪었던 그 과정 속에 있구나’라고 쉽게 짐작해 버려서, ‘분석적 중립성’을 망각한 채, 정답처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에는 분명 ‘개별적 특수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현명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우 성공적이었던 역전이의 외적 활용 사례도 있습니다. 사진촬영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수강생이었지만, 기술보다는 사진의 본질에 다가가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을 탐구하기 위해, 사진 작품을 감상하면서, ‘나에게 좋은 사진이란?’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 등,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습니다. 어두운 숲길을 함께 동행해 드렸지만, 제가 길을 직접 안내하지는 않았습니다. 슬쩍 너지(nudge) 하면서 어두운 숲길을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수강생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진 촬영법 교육을 받으러 왔는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하산하는 느낌입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서 도착한 목적지는 다음에 스스로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역전이라고 분류하기엔 조금 애매한 경우긴 합니다. 단, 분석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교육했던 사례입니다. 역시 사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셨고,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계획하면서 사진 촬영에 대한 관심이 생기셨던 분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임원이셨고,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셨습니다. 지적 능력이 우수하고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분이셨기 때문에, 저는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인지력이 뛰어난 분이셨기에 제가 생각하는 사진에 대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드리기보다는 넌지시 사진 책을 소개해 드렸고, 블로그를 통한 글쓰기를 추천드렸습니다. 카톡으로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지금껏 제법 많은 책을 읽었지만, 선생님 덕에 인생 책을 만났습니다." "다른 지인에게도 책 소개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깨달음을 얻으신 후엔 수업 회기가 남았는데도, 사진여행을 떠나셨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책출간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고 배움의 심도(depth of field)가 깊은 분일수록 논리적 사고(思考)는 뛰어납니다. 틀 속에서만 유용한 그 논리는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이야기 하지 못합니다. 사진을 좁은 틀 안에서 기술적인 논리로만 끼워 맞추려 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이야기 합니다.

비논리적인 틀 밖의 세상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사진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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