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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Nov 08. 2023

진짜 움직임

Authentic movement

그렇게 많은 소리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습니다. 내 몸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았듯이, 세상이 말해주는 소리 역시 듣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늘 언제나 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걸 ‘명상’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처음엔 음악 없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이젠 음악 소리가 방해되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명상하는 공간이 자연과 더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창을 열고 명상합니다. 불어 치는 바람이 빗물을 내 살 위에 뿌리면 나는 몸을 감각합니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몸의 형태가 모호해집니다. 빗방울은 내 몸의 형태를 다시 그려줍니다. 쇠붙이 난간을 때리는 규칙적인 빗소리는 메트로놈이 되고, 자동차 바퀴 틈 사이로 비집고 나가는 빗소리는 형태를 만들고, 젖은 흙냄새는 허파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흙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EBS 라디오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이야기합니다.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낯익은 성어가 나옵니다. 내 나이 정도면 ‘천장지구’는 홍콩영화 제목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한 홍콩영화죠. 그 의미가 이렇게 깊은 줄 몰랐습니다.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늘 언제나 그때의 하늘과 땅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니 하늘과 땅은 장구(長久) 하기도 합니다. 드러나지 않기에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고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살고 있습니다. ‘몸’이 생각났습니다. 내 몸은 자연의 하늘과 땅처럼 ‘장구’ 하지도 못한데, 100년도 쓰지 못할 몸인데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너무 무시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uthentic movement 진짜 움직임’은 깨침을 위해 면벽하는 선불교 스님처럼 저에겐 하나 의 ‘화두’로 다가왔습니다. 나탈리 로저스가 시도했던 ‘무정형 프로젝트’ 역시 ‘Authentic movement’를 끌어내기 위함이었고, 그러한 움직임은 어떠한 방어기제도 발동하지 않은 진짜 내면의 표상일 테니까 말이죠. 또한 그것이 1) 아도르노가 말한 ‘자연미’이자 ‘인간성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2)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Authentic movement로 읽힙니다. ‘내 안의 움직임이 나에게 어떤 움직임으로 개념화되었을 때, 그 움직임은 더 이상 나의 진짜 움직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uthentic movement’는 나를 다시 사진 찍도록 만들었습니다. ‘Authentic movement’는 ‘here & now’이고 실존임을 느낍니다. 사진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찍는 그 순간만이 존재하는 실존 그 자체입니다. 관념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우리에겐 사진은 실존이자 곧 ‘죽음’입니다. Seize the day, 현실을 사는 실존적 삶이 죽음과 맞닿아 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1) 아도르노는 계몽주의 이후, 도구화된 이성이 만든 산업화한 예술로부터 ‘자연미’의 환원을 주장했고, 그것은 ‘예술’만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예술이 바로 Authentic movement라 생각합니다.


2)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 도를 도라고 부르면 더 이상 도가 아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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