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밖, 단역배우, 수비수
사진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하나 오픈했습니다. '사진은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이야기합니다'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사각의 틀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사진인데 나는 틀 밖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작은 사각 틀 속에 모두 담지 못할 세상을 억지로 담으려 하지 말고, 틀 밖의 세상을 담아보세요'라고 수업합니다. 나는 언제나 틀의 안쪽보다는 바깥쪽에 더 큰 관심이 있나 봅니다. 나의 간단한 논리는 틀 밖의 세상은 비주류일 수는 있지만,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비주류 사진작가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주류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틀 밖의 더 큰 세상이 두려워서 일 수도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연극을 했어요. 물론 동아리 수준입니다. 우연히 펑크 난 배역을 땜빵하기 위해 시작된 연극이었지만 동아리 회장까지 했으니, 제법 연극에 빠져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곧 죽어도 단역만을 고집했어요. 처음 시작한 배역이 1인 3역을 소화하는 단역이기도 했지만, 다음 공연에도 그다음 공연에도 주연에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내 안에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언제나 틀 밖에 있었습니다. 운동을 해도 나는 언제나 수비를 좋아했고, 공격에는 소질도 없었지만 더 넓은 영역을 움직이며 전체를 볼 여유가 있는 수비가 좋았어요. 주인공을 뒷받침해주는 단역이 좋았듯이, 공격수의 공격력을 배가 시킬 수 있는 탄탄한 수비에 더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동아리에서 단역배우로 활동할 때 연출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어요. 공연이 임박해지자, 단역의 무대 연습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연출 선배를 보고, 왜? 주인공만 연습을 시키고, 단역 배우들에겐 관심이 없느냐고 따지고 물었어요. 연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극단의 공연 수준이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 아세요?" "단역의 연기력이에요" "어느 극단이나 주인공은 웬만큼 연기를 잘해요. 하지만 수준 낮은 극단일수록 단역의 연기력에서 차이가 난다고요." 단역은 대사가 적어서 비교적 쉬워 보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적은 양의 대사가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대사를 실수하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만, 단역은 어쩌다 등장해서 실수를 하면 연극을 망칠 수도 있어요.
주류의 사진작가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기 마련입니다. 패션 사진작가, 제품 광고사진작가, 음식 사진작가, 건축물 사진작가 등 자신의 주종목이 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부문의 틀 속에서 주류로 편승되었기 때문에 그 일만 하기도 바쁩니다. 하지만 비주류인 나는 다 합니다. 장점이 있다면, 어느 한 부문의 일이 끊겨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 선생님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내가 비주류 사진 선생님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복잡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이야기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을 찍을 수밖에 없지만 그 상징 너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틀 밖의 이야기이고, 비주류의 영역입니다. 내가 주류에 편승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입니다. 틀 밖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창조적 사고력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결국, 틀 밖의 비주류로 남아있게 해주는 것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류에 편승하고자 기웃거리기보다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촬영하고 교육하는 기꺼이 비주류 사진작가 선생님으로 남습니다.
<길 밖>
길 밖에 서고 싶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길 밖에 차를 세우고 싶다.
스쳐 지나가 버린 모든 것을,
스쳐 지나가지만 않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지만 용기도 자신도 없음을 난 알고 있다.
다시 출발할 때의 위험을 이미 난 알고 있다.
길 밖의 여유를 잃은 채.
길 안의 더 큰 위험을 운명에 맡긴 채...
용기 없는 나는
무서워서 더 달린다.
길 밖에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