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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Jan 13. 2021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에요. 이런 날엔 늦잠을 자고 싶지만, 이 녀석은 아침 식사를 거르는 법이 없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읽고 싶은 책이 있어요. 다른 건 안 하고,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완독 할 작정입니다. 비교적 얇은 책이라 완독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할 듯한데, 치열하게 읽기엔 어쩌면 부족한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텍스트가 부족해도 무조건 노을이 물들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반복해서라도 계속 읽을 작정입니다. 오늘은 사진을 찍고 싶은 날이거든요.


그래도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 우선 이 녀석 아침밥만 챙겨주고, 이불속에서 잠시 비비적거려야겠어요. 눈에는 좋지 않은 행동인걸 알지만, 아침에 욘석 밥 주고 이불속에서 보는 유튜브가 왜 이리 재미나는지 모르겠어요. 백수의 유의어인 프리랜서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가요? 내 옆에서 쌔근쌔근(드르렁~ 드르렁~, 가끔 사람 같죠~) 잠든 사이에 어느덧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스미기 시작했어요. 이젠 거실을 청소하고 라디오를 틀어요. 커피도 한잔 내리고요. 이젠 제법 창가에서 햇빛의 온기가 느껴져요. 슬슬 사진을 찍어볼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진짜 사진기를 들고 찍는 사진은 아니고요! 저는 사진 찍고 싶을 때 책을 꺼내 들기도 해요. 오늘 해 질 녘까지 하루 종일 사진 찍을 작정입니다. 카메라를 들지 않았을 때 오히려 사진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거실 난방은 돌리지 않는데도 온도차가 커서인지 거실 창엔 물이 주르륵 흐르네요. 집에서도 겨울엔 두터운 옷을 잘 입어요. 담요도 종종 사용하고요. 난방비를 아끼려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조금은 차가운 공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야 창가로 비추는 햇살의 온기가 느껴져요. 오늘은 그 빛으로 책을 읽을 생각입니다.


창가에 놓아둔 커피는 어느덧 식어버렸네요. 많이 치열하게 읽고 있어요. 연필로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백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어요. 아무도 못 알아볼 것 같은 글씨체예요. 따뜻한 커피를 다시 채우려 부엌에 다녀왔어요. 이 녀석은 언제나 내 발에 붙어 있고, 어디를 가든 졸졸 따라다녀요. 화장실도요. 늘 나만 바라봐요. 책을 읽는 동안 바로 내 옆에 없어서 처음엔 몰랐어요. 커피를 다시 내리려 갔다 와서야 알았죠. 거실 소파를 차지하고 늘어지게 잠들어 있네요. 드르렁 코도 골지 않고 늘어져 있어서 몰랐어요. "짜식 거기 있었구나" 하면서 다시 책을 읽기 위해 창가로 와서 앉았어요. 책을 뒤집어 놓고, 차를 마시며 이 녀석을 다시 바라봤어요. 


그리고 계속 바라봤어요. 한참만에 꿈틀! 살아있네요. 가끔은 자면서 꿈을 꾸나 봐요. 네발이 반복적으로 움찔움찔할 때가 있는데, 아마도 산책할 때 뛰어다니는 꿈을 꾸나 봐요. 하지만 오늘 아침엔 꿈도 꾸지 않네요. 숨소리도 들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잠들어 있어요. 한참을 바라보다 스마트폰으로 찍었어요. '치킥'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정말 아주 나중이길 바라는 그 날에 바로 저 모습일 것만 같아서 겁이 났어요. 오늘은 이 녀석이 나에게 그날을 보여주네요. 흐르지 않는 눈물은 심장 속 아주 얇은 혈관에 가서야 지릿하게 존재를 드러냅니다. 기억하려고요! 겪을 수밖에 없는 그날을...


지난 사진을 잘 보지 못해요. 과거 속에 살아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해요. 지금은 그 모습이 아닌 그때의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게 힘들어요. 때론 내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라서 보는 게 힘들어요. 나를 향해 웃고 있지 않는 과거에 이미 죽어버린 그를 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미래의 그날을 기억하도록 해 준 오늘의 이 녀석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과거가 되어버리겠죠. 그래서 과거일 수밖에 없는 사진은 그저 '눈물'이에요.

너를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한 컷 담았어! 너의 죽음을 기억하며 함께 할게!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Memento mori'

Sincerely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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