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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Aug 15. 2021

[책] 카불의 사진사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의 카불 일기

읽지도 않을 책을 사기도 합니다. 표지가 예뻐서 산 책도 있습니다. 사진 책에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지부터 소제목 내용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읽고 싶어서 책을 사기도 하지만 그냥 사야 할 것 같아서 언젠가는 보겠지 하면서 사게 되는 사진 책도 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사진집을 아껴서 볼 때도 있습니다. 아끼려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을러서 일 수도 있고, 내용을 봐도 별 감흥이 없어 덮어두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겉표지에 끌려서 구매한 사진집을 떠들어 보지도 않고 모셔둔 책도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쿵' 하고 제 뒤통수를 내리치는 책이 가끔씩 책 꽂이에서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당장 보지 않아도 어떤 끌림이 있으면 사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자마자 바로 읽어버리고, 치열하게 나와 이야기 나누게 만드는 책도 있습니다. 중고 서점엘 가는 편입니다. 며칠 전 오전 수업을 마치고 중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10년도 더 된 책에 눈길이 가서 구매했습니다. '카불' 이란 말이 선뜻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뒤 배경의 여인들과 포토저널리스트라는 소제목을 읽고 나서야 아프가니스탄을 떠올렸습니다. 우리에게 그곳은 뉴스에서나 접하는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자격 없는 사진 선생님>

오전에 사진 수업을 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과 저널리즘 사진 대해서 일장 연설을 했던 터라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티브 맥커리를 이야기하고 매그넘을 만든 4명의 사진가 중 한 명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언급했습니다. 심지어 스티브 맥커리의 네이버 강연을 추천하고, '아프간 소녀'가 DVD 겉표지를 장식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소개했습니다. 기자가 꿈인 '학생기자단' 학생들을 위한 사진 강의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과 저널리즘 사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강의한 적도 있습니다. 기준을 잡아주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말이죠. 이 책을 읽고 나서 난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한국인 정은진을 몰랐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나를 계속 돌아보게 만드는 사진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첫 페이지부터 끝나는 에필로그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끝났습니다. 뭔가 싸우다가 끝장을 보지 못하고 끝내 버린 것 같아서 정은진 작가의 다른 책 2권을 찾아서 주문했습니다. 다음은 아프리카로 간다고? 에필로그에서 정은진 작가는 그렇게 밝혀 두었습니다. 책으로라도 따라갈 작정입니다. 책이 출간된 2008년에 '카불의 사진사'를 읽었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책 속에 가겠다고 한 미래의 아프리카행은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바로 2권의 책을 주문했습니다.




'네가 다큐멘터리가 뭔지 알아?' '진짜 저널리스트의 삶을 알아? '네가 하는 사진은 뭐야?' '너는 어디쯤 와있는 거지?' 등의 말들이 머릿속을 괴롭힙니다. 저자가 책 속에서 스스로를 질책하는 순간은 공감을 넘어 한숨으로 나 자신을 계속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2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1년 동안의 일기입니다. 그래서 소제목 옆에는 날짜가 계속 나옵니다. 내 인생의 그날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 일기의 시작 일자는 2006년 8월 16일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사진을 시작하고 7개월쯤 흐른 뒤의 일입니다. 그때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미국에서 사진 유학 중이었습니다. 인도네이시아 친구(다니엘 산토소 /Daniel Santoso)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는 것도 귀찮아서 거절했고, 패션 사진에 관심이 있는 몇몇 친구들은 뉴욕으로 가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소극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유럽으로 며칠 다녀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정은진 작가가 미주리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몸으로 뛰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던 것을 자책하는 순간 저 역시 괴로웠습니다. 변명하자면 저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저의 목적은 포트폴리오의 완성도 아니고, 멋진 경치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사진을 바라보는 나의 눈의 기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심했던 기억도 납니다. 얼굴 전체가 겨울철 입술이 부르트듯이 거칠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사진이 뭔지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으로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몰랐습니다. 억지로 답을 구하려고 애쓰고 답이 논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자 고통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언어학을 공부했을 때, 유니버설 랭기쥐(Universial language)의 실마리를 찾아보겠다고 머리를 쥐어짜다가 머릿속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간질거림을 경험한 때와 비슷했습니다.



<관념으로만 남아있는 다큐멘터리 사진>

정은진 작가는 사진은 발로 찍는 거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사진은 어찌 되었건 그곳에 가야 찍을 수 있습니다. 생각만으론 찍을 수 없습니다. 나만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것 역시 나만의 사진 생활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현실 속에서 타인과 공유가 불가능합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접하면 이 분야가 절대 고상한 필드(field)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관념으로만 사진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지극히 현실 속에서 처절하게 얻어지는 사진입니다. 처절한 현장을 매력적인 작품 사진으로 담아내야 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합니다. 그래야 저널리스트는 유명해집니다. 그래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돈과 명예를 목적으로 촬영한 사진이라도 보도된 사진은 생생한 정보 전달은 물론 큰 울림을 주는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엄청난 자극과 자책이 교차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만약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다큐멘터리 사진에 몸이 반응하여 전장으로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내가 그렇게 치열하게 사진을 찍을 수나 있었을까? 아마 나는 '상'을 받기 위해 촬영을 이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 행위 자체를 중단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왜? 나는 대학원 때 함께 공부했던 동료가 LA에서 한국 신문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던가! 일자리를 위해 학과 사무실에서 교수와 상담도 적극적으로 했으면서 왜? 신문사에 취업할 생각은 못 했을까? '뱅뱅클럽'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이런 느낌은 없었습니다. 정은진 작가가 한국인이라서 공감이 많이 된 걸까? 그의 아프간 일기가 나의 사진 유학과 시기가 맞아서 일까? 정은진 사진기자의 발자취를 조금은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콘셉트 사진에 대한 몸의 역겨움의 해답.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을까?>

상업사진 학교에서 사진을 처음 시작했던 2006년 초에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카불의 사진사'가 출간되기 불과 3년 전이고 정은진 사진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머물기 시작한 지 1년 전에 출간된 책입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작품들은 3년 전이 아닌 한 세기 전 190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종을 노리는 저널리스트의 시간 다툼으로 완성해야 하는 보도 사진과는 '속도'에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기록사진과 보도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의 주제가 있는 시리즈 작품에 비해서도 최민식 사진가가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내가 공감하기 힘든 시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나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이 관념으로, 사진 학습을 위한 또 하나의 사진 장르로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읽은 이 책에서도 '사진의 힘'에 대해서는 분명히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Professional photographer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상업사진학교의 커리큘럼은 사진 자체에 대한 고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이유가 대학원으로 조기 진학하게 만든 이유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기술 훈련을 위한 반복 학습에 돈을 쏟아부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실습 과정은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저에게는 사치였고, 얼굴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힘겨웠던 그 고민거리들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카불의 사진사'를 읽고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가 고민을 중단하고 차라리 전쟁터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주제로 사진을 찍으러 발로 돌아다녔다면 관념 속에서 그렇게 허우적거리진 않았을 것이고, 땀으로 얻어낸 사진의 소중함은 최소한 느끼지 않았을까? 의식의 영역이던 무의식의 영역이든지 간에, 관념 속의 무언가를 억지로 콘셉트로 만들어내어 그럴듯한 작가노트로 역겹게 치장하기 보다는 그 생각들을 우리들의 거짓 아닌 진짜 삶의 현장 속에서 찾아내어 사진으로 멋진 작품으로 포현해 낸다면 상을 타기 위한 몸부림이 되었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었건 명예를 얻기 위한 사치스러운 위장전술이 되었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쫓는 관념을 표현하기에 급급한 작품처럼 역겹진 않을 것 같습니다. 진짜 Conceptual photography는 관념의 표현으로써의 사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진이어야 할 것입니다.





정은진 작가가 말했듯이 사진은 결국 발로 찍는 것입니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추상화해서 표현하는 미술작품 같은 사진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위의 어딘가에 발을 디딘 채 그 현장을 나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일이 사진으로 하는 진짜 관념의 표현일 수 있고, 사진이니까 가능한 예술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이고, 다큐멘터리 사진이 그걸 증명합니다. [Straight photography]


정은진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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