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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Aug 23. 2021

[영화] B면 : 엘사 도프만의 폴라로이드

영화장면 캡처 / neflix

감독 : 에롤 모리스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을 소개합니다. 상업사진 분야에서 화려하게 성공하거나, 파인아트에서 이름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끌렸습니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성공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지금의 다큐영화가 거의 유일하게 검색되는 이야기로 봐서는 심하게 전략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되어 더 좋았습니다.

'B 컷이 작품 사진이다' '사진은 세월이 무게를 실어준다'라는 말을 수업 때 하곤 합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엘사 도프만은 B-side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의 제목도 B-side입니다. 내가 말한 B 컷과 그녀가 말한 B-side는 사진을 선택하는 주체가 다를 뿐 같습니다. 고객이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을 말합니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선택한 사진은 아니기에, 오히려 B 컷이 작가의 눈에는 더 좋아 보였던 사진도 더러 있었을 겁니다.

내가 'B 컷이 작품 사진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의 눈으로 바라본 B 컷이 세월이 흐른 후엔 A 컷 이상으로 맘에 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종종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함부로 지우지 못합니다. 예전에 필름 사진으로 촬영한 사진에선 이러한 보물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때는 몰랐던 나의 A 컷을 발굴하는 맛이 있죠.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할 때는 미리 이미지를 볼 수 있고, 쉽게 지울 수 있어서, 미래의 나의 눈이 즐거워할 사진을 잘 찍지도 않게 되고, 쉽게 지워버리게 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내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면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엘사 돌프만은 20x24인치 대형 폴라로이드로 인물사진을 촬영하는 작가였는데, 2장을 촬영해서 고객이 선택하지 않은 한 장을 따로 보관해두었습니다. 대형 카메라로 필름 사진을 촬영해본 사람이라면 side라는 표현에 익숙할 겁니다. 35mm 롤필름이 아니라(*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필름), 인화지 크기만한 낱장 필름(sheet film)을 장착해서 촬영하는데 보통 앞뒤로 두 장을 꼽아서 촬영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면(side)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습니다. 한쪽 면은 고객이 선택한 A 컷, 선택받지 못한 면 B 컷, B-side! 가 되는 셈이죠.




영화장면 캡처 / neflix

엘사 도프만이 사진에서 은퇴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폴라로이드사는 폴라로이드 생산 중단을 이미 선언했을 때입니다.(2007), 나는 그때 엘사 도프만처럼 폴라로이드의 매력에 빠져 폴라로이드 인물사진 촬영 서비스를 막 시작했습니다. 끝물이었던 샘이죠. 저는 늘 그랬습니다. 뭐든지 끝물에 걸려들죠. 폴라로이드사의 대형 폴라로이드 컬러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을 경험한 사람은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엘사 도프만은 심지어 20x24인치의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용한 몇 안 되는 작가입니다. 저도 그런 카메라는 구경도 못해봤으니까요.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필름조차 구할 수 없게 되어버렸죠. 다시 이어지겠지란 희망은 사실 없었습니다. 저도 디지털카메라로 대부분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으니까요. 비싼 폴라로이드 필름을 제법 많이 사재기해두었죠. 다시 판매가 시작될 때까지 버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교육용으로 대부분 다 소진하고, 박스를 개봉하지 않은 폴라로이드 필름 한 박스만 남아있습니다. 유통기한이 너무 오래 지나 현상이 안될 듯합니다. 30년 동안 폴라로이드로 인물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던 엘사 도프만이 부럽습니다. 전 그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죠.




영화장면 캡처 / neflix

폴라로이드 인물사진을 다시 촬영하고 싶게 만든 영화에요. 폴라로이드사가 만든 폴라로이드 필름의 색감은 누구나 매력을 느낄만하죠. 채도가 떨어져 보이진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색감을 표현하고, 피부의 잡티를 제거하지 않아도, 굳이 픽셀을 뭉개서 피부를 부드럽게 할 필요도 없이, 만족할 만한 인물사진이 완성 되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 한 장의 사진이라는 게 폴라로이드의 매력인듯해요. 그런 사진을 찍고 서비스하고 싶은 갈증이 이 영화를 통해 증폭되어 버렸습니다. 원본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원본 사진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디지털은 이해할까요?




*넷플릭스를 통해서 영화를 관람했고, 포스팅한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장면을 캡처해두었습니다. 아날로그 필름 사진을 경험해본 사람, 특히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의 맛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에겐 아련한 고향의 향수처럼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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