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에 무너졌던 심리학 박사의 이야기 / 윤정애 지음
참 신기해요. 글이 잘 써지지 않아요. 이 책 리뷰는 꼭 하고 싶은데 잘 써지지 않아요. 책을 쓴 저자(윤정애 교수)를 학교로 초청해서 특강까지 추진했으니, 글로 남기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손이 떨리고, 초초해요. 제법 썼다가 지워버린 것만 벌써 세 번째네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첫 번째 문장만 쓰면, 그다음은 생각이 흐르는 데로..., 그리 어렵지 않게 글을 완성하곤 했는데, 지금은 글이 툭툭 끊겨요. 저의 과거가 중간중간 산발적으로 공격해 들어와서 힘드네요. 그걸 차단하려고 애쓰니 글이 써지질 않네요. 글을 쓰는 순간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저의 스타일인 만큼 책의 리뷰라는 강박은 조금 내려놓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뜰 채로 건져내듯 적어 내려가 보겠습니다. 이야기의 맥락이 흐려질 수도 있겠어요.
가슴이 이유 없이 두근거렸던 적이 있어요.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죠.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차 한잔의 여유와 가벼운 브런치 정도를 하고 일정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죠. 불안해서 심장이 뛰는 것인지, 심장이 자꾸 빨리 뛰어서 불안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에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일단 빨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는 날이 많았어요. 움직이면 그런 증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어요.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어요. 버섯 성분이 불안에 좋다고 해서, 버섯 성분이 들어간 영양제를 사다가 먹었어요.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했죠.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약에 의존하는 이유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움직임에 대한 생각은 사진 작품으로도 완성하고 싶은 주제인데요. 저는 움직일 때 뭔가 세상이 달라지는 걸 느껴요.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걸 몹시 힘들어해요. 그래서 편안히 시간을 보내면서 휴식을 잘 못하고, 잠도 오래 자지 못하는 편이에요. 너무 몸이 피곤해서 그냥 가만히 쉴 수밖에 없을 땐 꽤나 무기력해지고 두통에 시달리기도 해요.
움직임에 대한 생각은 징크스가 되었어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런 일도 생기질 않아요. 문의가 있어야 먹고살 텐데 불안해지죠. 그래서 직원들과 스튜디오에서 탁구를 치던지 아니면 다 같이 산책을 나가기도 했어요. 움직임에 대한 강박 혹은 징크스죠. 신기하게도 일은 우리가 움직일 때 들어오더라고요. 물론 그냥 생각이겠지만, 지금도 늘 느끼고 있어요. 문의는 꼭 다른 일을 할 때 방해하듯 찾아와요. 강의할 때, 운전할 때, 촬영할 때 문의전화가 옵니다. 단순히 느낌이라고 하기엔 통계상으로도 빈도가 높아요. 그래서 늘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강박처럼 다가오기도 해서 편히 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꼭 전화가 와서 방해를 하죠. 불어 터진 라면을 먹거나 다 식은 국을 혼자 남아서 먹은 적도 많아요. 이런 건 저만 경험하는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분명 움직임과 현존하는 세상과의 관련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움직일 때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간의 궤도에 들어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들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게 되고, 그래서 그들과 만날 수 없는 것이죠. 같은 공간에 사는 것 같지만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불안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의 시간의 흐름은 다른 것 같아요. 누구나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대학원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현상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조금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정리해보면,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것을 나만의 세상 속으로 어떻게 끌어들이는지, 또한 그것이 움직임과 시간의 개념에서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자꾸 떠올라요. 실존적인 물음과 연결해서도 고민하고 있어요. 말씀드린 대로 생각의 흐름이 책의 리뷰와 관계없이 흘러가는 느낌이네요.
사진이란 매체는 우리의 바라봄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제한하고 확장하고 있는지, 그 역할에 대한 궁금증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 치유적 관점에도 매우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은 우리 개개인을 이해하고 싶은 것 같아요.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사진을 매개로 한 심리 치료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어요. 대학원에서 예술치료를 전공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존재에 관한 물음은 죽음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사진은 대상을 죽어야 시작되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으니, 실존적 물음을 던지면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방해하듯 끼어드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려 간 이제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잦아진 듯해요. 드디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에 집중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