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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Sep 15. 2023

[책]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앗! 어쩌지?라는 걱정스러운 마음과 '맞아~ 이거야'라는 깨달음을 동시에 느끼면서 읽었다. 그냥 감사했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은 것을 유시민이 말해주었다. 내 옆에서 글로 말하듯이 내게 알려주었다. 잘살아야 글도 잘 쓴다고 책에서 그는 말했다. 그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픔도 느껴졌다. 나도 글을 간결하게 쓸 줄 몰라서 못쓰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근데 그 깨달음은 쉽게 오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비 오는 날 길가에 서 있다가 갑자기 물폭탄을 맞은 기분이다. 내 몸이 흠뻑 젖었다. 그런데 난 기분이 좋다. 개운하기까지 하다. 


읽기에 힘들어도 힘든 만큼 내 생각의 깊이를 복잡한 글이 더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감하기 어려워도 꾸밈이 많으면 내 속의 감정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더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감정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는 걸 이제는 깨달았다. 내 글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면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걸 글로 다 표현 못하는 것 같아서, 글이 복잡해지고, 자꾸 꾸미면서 글을 썼다. 심지어는 국적불명의 혼탁한 언어를 복잡하게 늘어놓고선 유식해 보여서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어쩔 땐 일부러 복잡하게 글을 쓸 때도 많았다. 친구들이 글을 이해 못 하면 '너네들이 뭘 알겠어?'라는 식으로 속으로 무시하면서 혼자 깊이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문과대학을 다녔기에 시험지에 답을 주로 글로 채울 때가 많았다. 아는 게 없으니, 여백이라도 성의 있게 채워야 그나마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을 늘리기 시작했고, 내용도 없는 글인데 엄청 길게 잘도 썼다. 장수 채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읽어보면 뭔가 그럴듯한데 무슨 소리 하는지 애매한 글들로 여백만 채웠다. 언제부턴가 내 글이 나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써놓은 글을 봐도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 하나도 모를 때가 많았다. 이건 방언 수준이었다. 


쉽게 쓰다 보면, 이렇게 써도 되나? 너무 밋밋하지 않나? 그래도 글인데 좀 글다워야 하는 거 아닌가? 좀 어려워야 읽다가 생각도 좀 하고 그러지 않나? 정보 전달도 중요하지만 생각하도록 만드는 글도 좋은 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짜증 나는 소리다. 생각할 힘을 주는 글이라기보다는 내 글은 그냥 지저분하고 짜증하는 글이었다. 요즘은 소설도 꾸밈이 없더라.


유시민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읽고 난 후 나 같은 물벼락을 맞으신 듯하다. 난 유시민 작가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서 물폭탄을 맞았다. 그의 추천에 따라 물벼락도 맞을 생각이다. 


무조건 이 책[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어보자 한국인이라면,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 쓰기]로도 한걸음 더 나아가자.

훌륭한 글을 쓰고 싶으면 잘 쓴 글을 따라 쓰는 데 그치지 말고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책본문 중에서]


맞는 말이다. 사진도 그렇다. 잘 찍은 사람의 사진을 흉내 내고 모방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잘못된 사진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나의 기준이 높을 때,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길 때), 내 사진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래야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최소한 나쁜 사진은 만들지 않게 된다. 좋은 구도란 말로 치면 조리 있게 잘 말하는 것이다.


유시민의 베스트셀러 영업비밀은 쉬운 글에 있었다. 
누구나 성의 있게 읽어 내려간다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


글을 쓸 때 최근에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내가 많은 것을 알아야 더 쉽게 쓸 수 있더라. 피카소는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는데 평생이 걸렸다고 한다. 쉬운 글의 형식을 흉내 내는 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정말로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건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피카소도 아이처럼 그리는데 평생이 걸렸다고 하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그 형식이 어려웠을 리 없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처럼 느끼면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면서 그린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웠을 것이다. 이오덕 샌생님도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라고 하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바가 크다. 


나도 책을 쓴 저자다. 그 글들이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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