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야마치도리 木屋町通り

물 위의 길 - 길을 따라 사람이 흐르고 삶이 흐른다.

by 비오
길은 사람이 흐르고 삶이 흐른다.

길을 따라 이어진 동네의 풍습과 문화가 비슷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길을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재화를 나누었다. 상인들은 길을 따라 물건을 실어 날랐고 소문을 날랐다. 길은 핏줄이고 힘줄이었다. 길을 따라 이루어진 모든 소통은 사람들의 건강한 삶과 풍요로 이어졌고 마치 나뭇가지에 열매가 맺히듯 길이라는 가지에 마을이 만들어졌다. 소통은 마을에서 마을로 건강과 활력을 불어넣었고 점점 더 건강해진 마을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토에는 물자와 재화를 실어 나르기 위해 2년여에 걸쳐 만들어진 운하가 있다. 운하를 따라 흐르는 물건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운하 주변에 둥지를 틀어 형성된 키야마치(木屋町)라는 마을과 키야마치도리(木屋町通り)라는 길이 있다.


근대 수도로 거듭나고 있었던 16세기 교토에서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집이나 절을 짓기 위한 목재가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교토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목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산에서 교토 시내까지의 운송이었다. 마치야를 짓기에 필요한 목재는 4.2m 정도의 길이였기 때문에 육로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착안한 것이 수로길을 내서 옮기는 것이었다. 교토의 중심을 흐르는 가모가와의 물을 마을로 끌어들여 수로를 만들고 운하로 사용했다. 다만 운하의 물깊이가 30cm 정도여서 바닥이 평평한 배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배가 ‘다카세부네(高瀬舟)’였고 다카세부네가 운행되는 운하의 이름은 다카세가와(高瀬川)로 불렸다. 다카세부네는 튼튼한 밧줄로 묶어 양쪽에서 사람들이 끌어 목재나 각종 물품들을 운반했다. 배를 끄는 이들을 히키코(曳き子)라 불렸는 데 가장 번성한 때에 700여 명 정도가 160척의 배를 끌었다. 다카세가와 양옆에 길이 나있다.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DSC07296.JPG 다카세부네 | 高瀬舟


다카세가와를 따라 목재와 각종 생활 물품이 운송되다 보니 강을 따라 풍경이 달라졌다. 에도시대 이전에는 지붕만 얹은 오두막처럼 만들어졌던 집들은 다카세가와가 생기고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씩 바뀌어 마치야 등이 지어져 근대적 모습이 갖추어졌다. 주거 시설의 안정은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마치 슈가 중심이 되어 상업 등에 종사하는 주민들끼리 서로 도우며 점차 발전했다.

다카세가와 주변에는 목재를 다루는 도매상과 소매상들이 들어섰고, 건축을 위한 목재뿐만이 아니라 땔감까지 구하러 온 이들로 북적였다. 타국에서 온 곡물, 간장 등은 후시미 항에서 다카세부네로 환적됐고 다카세가와를 따라 시내로 실어 날랐다.

물류가 소통되는 곳에 마을이 번성했고 마을의 이름은 에도시대 중기부터 ‘키야마치(木屋町)’ 라 불렸고 운하를 따라 생긴 길은 키야마치도리(木屋町通り)라 명명됐다. 단어 그대로 나무방 마을, 나무방 마을길이다. 장사의 번성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여행자가 늘면서 이후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의 가게도 늘어났고 음식점 앞길은 사업을 위해 필요한 거리로 변모했고 뒤편은 요리, 새로운 유흥으로서 게이코, 마이코의 문화도 발전했다.

번성했던 키야마치였지만 20세기 초 자동차, 철도 운송이 주류의 역할을 하면서 다카세강도 그 명운을 다했다. 목재를 취급하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술집, 일용품판매점, 쌀가게 등이 들어섰다.

마을이 형성된 원래의 취지와 목적은 사라졌지만 소통이 숨통이 되어 건강해진 키야마치도리는 살아가는 사람, 스쳐가는 사람 모두에게 편안한 삶을 선사하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현재는 젊은이들을 위한 음식점과 가게도 늘어나며 젊은 거리가 됐다.


DSC07291.JPG 다카세가와의 사람들


산은 사람들에게 나무를 선사했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강을 따라 나무를 나누었다. 집과 땔감으로 체온을 나누었고 길 위에 따뜻함을 남겼다. 운하로써의 제 기능을 다하고 생활의 길이 된 키야마치도리에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가꾸어 운하 양 옆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은 사람에게, 사람은 사람에게, 다시 사람은 자연에게 나무를 선사했다. 물의 길을 통해 서로 존중하며 소통했기에 만들어진 선순환이다.


존중하며 주고받음과 나눔 사이에
숨 쉬듯 강물과 함께 흐르는 것들이
길을 살아있게 만들고 삶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키야마치도리를 걷는 내내 펼쳐진 풍경은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 위의 길엔 항상 물살의 재잘거림이 가득했고, 나는 재잘거림에 걷는 내내 깨어있었다. 재잘거림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그 길가에서 건강하고 정겹게 살아가고 있다. 바쁘게 걷던 내 걸음 소리가 물결의 재잘거림을 방해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물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여유 있게 천천히 걸었다. 그래서인지 교토의 길을 걸을 때 키야마치도리를 거쳐갈 때가 많았다. 이왕이면 물이 흐르는 길을 걷고 싶어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교토에서 돌아오는 길도 교토역으로 가기 위해서도 키야마치도리를 걸어서 왔다. 꾸미지 않고 소박한 그 길을 걸으며 떠나는 것이 새삼 아쉽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지만 사람들 곁에서 점점 더 자연이 되어간다는 것을 키야마치도리에서 느꼈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연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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