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폰바시 一本橋

물 위의 길 - 배려가 스며든 길은 편안하다.

by 비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 있다.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길이지만 걷는 이를 향한 배려가 깃들면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이 된다. 그 길은 걷는 사람들에게는 선물과도 같다.

편안한 마음을 들게 하는 배려를 경험한 적이 있다. 스페인의 순례자길에 있는 노란색 화살표는 초행길을 걷는 이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준다. 걷다가 노란색 화살표를 보게 되면 안도와 함께 편안함이 생긴다. 주민들이 가꾸는 길섶에 나무와 꽃도 편안하다. 바람이 불면 초록의 물결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날아든 새들의 지저귐은 이 길이 살아있는 길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길에 만들어진 배려는 아주 오래전이었다 하더라도 그 길에 스며들어 편안한 마음을 만들어 준다.


만든 사람은 사라져도 배려의 마음은 남아있는 거다.


바닥에 흰모래를 깔아놓은 것 같은 강이라 시라카와(白川)라 불리는 강에 놓인 다리 중 잇폰바시(一本橋)라는 다리가 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이 다리는 절대 편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돌로 만들어진 데다 외나무다리라서 보는 것 자체가 아찔하다. 그래서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과연 건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까이 가서 봐도 그렇다. 두 개의 돌을 나란히 붙인 이 다리는 돌 사이 틈으로 흐르는 강도 보인다. 담력 시험이 따로 없다. 왜? 이렇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모습이다. 이 다리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에도시대이다.


DSC07370.JPG 잇폰바시 상단면


1907년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길이 약 12m, 폭 60 cm 정도로 시라카와 위 2m 정도 높이에 있다. 커다란 막대로도 보이는 돌다리를 돌기둥이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 다리가 생긴 지 100년이 넘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외관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보면 내가 갖은 선입견과 편견이 바로 사라진다. 좁은 두 개의 돌 가운데가 살짝 둥글게 들어가 있다. 걷기 편한 정도의 골이 파여있어 마치 다리가 나를 감싸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길을 건너는 주민들은 길을 걷듯이 자연스럽게 건너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모습도 여러 번 보였다. 120년 가까이 이 다리는 주민들의 생활 도로가 되어 온 거다.

잇폰바시를 멀리서 바라보니 다리를 만든 장인을 상상하게 됐다. 단단한 돌을 찾은 그는 두 개의 기다란 돌을 다듬기 시작한다. 처음엔 형태를 잡고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힌 후 조그만 망치로 표면을 다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걷는 면은 힘 조절까지 하며 부드럽게 만들었다. 원하는 것이 만들어진 다음 두 개의 다리를 붙여 놓고 걷다 보니 왠지 불안하다. 가운데를 살짝 들어가게 만들면 어떨까? 그는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두 개를 포개어 놓고 하나의 돌처럼 상단을 다듬었다. 너무 많이 파여도 안된다. 적당한 굴곡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 걸어보고 망치질을 반복했다.

건너는 사람이 편안한 느낌이 될 때까지 그의 망치질은 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다리에 스며들어 1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강을 건너는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았을까?


잇폰바시를 건너는 사람들


잇폰바시는 교오자쿄오(行者橋), 아사리하시(阿闍梨橋)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교오자와 아사리는 같은 말인데 제자를 가르치고 행동을 바르게 지도할 정도로 모범이 되는 천태종 승려를 말한다. 천태종에서 교오자가 되려면 7년간 1000일에 걸쳐 교토 북동부에 위치한 히에이 산(比叡山)의 약 300곳 성지를 도보로 종주하며 불경을 외워야 하는 센니치카이호교(千日回峰行 천일회봉행)를 완주해야 한다. 9일간은 물도 음식도 수면도 취하지 않고 부동명왕 진언이라는 것을 10만 번 외친다. 수행하다 죽는 사람도 부지기 수였다 한다. 모든 어려움을 딛고 완주한 이를 교오자(아사리)라 부르고 그 들이 산을 내려와 교토의 마을로 들어올 때 건너는 다리가 이 다리였다. 목숨을 걸고 종주한 스님들이 잇폰바시를 건널 때 다리를 만든 장인의 배려는 지친 그들의 다리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리라.

잇폰바시를 건널 때 다리 아래로 흐르는 시라카와의 물살이 매만져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착각이었겠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음이 돼서는 다음 여정을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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