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의 길 - 희망은 희망을 낳는다.
잘 가꾼 잔디밭에 울타리까지 쳐서 접근을 못하게 막는다 해도 어느덧 길이 나 있는 경우가 있다.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은 저서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Living with Complexity>에서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그가 제시한 용어는 ‘희망선 desire lines’이다. 길이 아닌 곳에 새로이 난 그 길이 희망선이다. 희망선은 여러 사람의 잠재된 요구가 암묵적 공감을 형성할 때 멀지 않은 곳에 길이 있음에도 다른 곳에 길이 생기는 것을 설명한다. 살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편한 경로를 찾아 암묵적 공감대를 형성할 때 만들어지는 길인 거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길들이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이는 모든 길에 희망이 담겨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길을 만들기도 하지만 길의 본래 용도와 목적을 바꾸기도 한다.
교토의 '철학의 길’이 그렇다.
1864년 ‘금문의 변’으로 시내가 불타 황량해진 교토는 재건도 채 마치지 못한 채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수도의 지위마저 도쿄에게 빼앗긴다. 도쿄 천도로 천황을 따라 교토 인구의 3분의 2가 도쿄로 떠났고 자연스럽게 산업의 중심도 도쿄로 이전됐다. 천년 넘게 일본의 중심이던 교토가 하루아침에 변두리로 밀려났다. 교토의 삶은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지쳐갔다.
교토부 지사로 부임한 기타가키 구니미치는 분위기를 바꿀 무언가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궁리 끝에 내려진 지사의 제안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교토 근교 비와호(琵琶湖)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계획이 성공하려면 해발 800미터의 히에이 산(比叡山)에 터널을 뚫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설마 하며 지사의 허풍쯤으로 치부했지만, 19세기엔 불가능해 보였던 이 공사를 지사는 강행했다. 1890년까지 5년간에 걸친 공사 끝에 1차 수로가 완성됐고 비와호소수(琵琶湖疏水)로 수도 시설과 수력 발전 시설이 가동됐다. 안정적인 물과 전기의 공급은 기계를 이용한 산업의 태동으로 이어졌고 교토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근대화에 물꼬를 텄다. 깨끗한 물을 공급받은 사람들은 활기를 되찾고 교토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역할을 멈추지 않고 있는 비와호소수엔 길이 하나 나있다. 이 길은 수로의 관리를 위해 관리자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잔디 깔린 길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길로 동네 주민이 하나 둘 걷기 시작하더니 길은 주민들의 생활 도로가 됐다. 메이지 무렵부터는 수로 주변 마을에 문인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문인들이 산책하는 ‘문인의 길’이라 불렸다.
1921년 근처 거주하던 일본화가 하시모토 칸세츠(橋本関雪)는 화가로써 성공하는 데 발판이 되어 준 교토를 위해 어떻게 보답할까 고심했다. 그러던 중 아내 요네가 벚꽃을 선물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벚꽃 묘목 300그루를 기증했다. 묘목들이 이 길에 심어져 풍성하게 자라나 이 길은 벚꽃길(関雪桜 칸세츠벚꽃)로도 유명해졌다.
교토 대학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산책을 계기로 길에는 ‘철학의 소경’,’ 산책의 길’,’ 사색의 길’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철학자의 산책으로 더 많은 사람이 길을 찾았고 그들만의 사색을 즐겼을 터다. 1972년 현지 주민들은 소중한 이 길을 보존하기 위해 자갈길을 깔았다. 이때부터 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철학의 길 (哲学の道 테츠가쿠노미치)’로 명명됐다.
1978년에는 걷는 이들이 편하도록 폐지된 시전철 궤도 부석을 석첩 형태로 깔아 지금의 모습이 됐다한다.
아침 시간에 찾은 철학의 길은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 외에는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한가로이 노니는 수로 속 붕어들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돌로 된 긴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데 수로 건너편에 오리 한 마리가 돌틈에서 숨 죽이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알을 품고 있어 가까운 곳에 사람이라는 위협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살며시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수로는 이미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잉태의 공간이 되기도 한 거다.
지사의 허황된 희망은 현실이 되어 삶은 나아졌고 사람들은 관리용 도로였던 길에서 산책을 즐기며 또 다른 희망을 가졌다. 희망은 희망을 낳고 그렇게 교토는 점차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가 되어 간 듯하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은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자연에 일부가 되어 곁을 지키며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희망의 싹이 내 안에 자라날 때 ‘그게 되겠어?’ 하며 싹을 잘라내곤 했다. 철학의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희망이 좀 허황되면 어때. 희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