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의 길 - 스스로와 대화할 여유
물가의 길을 걸으면 물살이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물살이 거칠면 큰 소리로, 물살이 잔잔하면 작은 소리로 말을 하는 것 같다. 걷다 보면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나도 대화를 해본다. ‘어디서 쉬면 좋을까?’ 재잘거리는 물에 묻기도 했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쉴 장소를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앉아 쉬면서 흐르는 물을 가만히 본다. 한 번은 나를 떠나는 흐름의 물결이었고 또 한 번은 나에게 다가오는 흐름의 물결이었다. 떠나는 물결보다 다가오는 물결에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건 나만의 느낌이겠지.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터득한 사회적 본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에게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을 볼 때의 느낌들이 살아나면서 복잡한 생각에 휩싸인다. 안 되겠다. 큰기침 한 번 하고 여유를 찾은 다음 기온(祇園)으로 흘러든 시라카와(白川)를 따라 널따랗게 펼쳐진 마지막 물 위의 길 미나미도리(南通り)를 걸었다.
기온 시라카와 미나미도리는 말 그대로 ‘기온에 흐르는 시라카와의 남쪽 길’이다.
‘기온(祇園)’은 기온 신사라고도 불리는 야사카 신사(八坂神社) 앞 시조도리(四条通)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걸쳐있는 지역이다. 신사에 방문하는 참배객들로 인해 신사의 앞쪽 지역이 ‘몬젠마치’로 번성했다.- 신사의 문 앞에 번성했기 때문에 문전 마을(門前町 몬젠마치)이다.- 특히 이 지역은 ‘가부키오도리(歌舞伎踊り)’가 공연되고 시조도리 주변이 연극 마을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드나 보다. 이때가 에도시대 중반이다.
사람들의 방문이 빈번해지면서 그 들을 위한 찻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온 내에 여섯 개 마을이 차야마치(茶屋町 찻집마을)로 개발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온시라카와이다. 자연을 벗 삼아 차를 마시는 운치는 시대와 상관없다. 흐르는 시라카와를 따라 차를 파는 마치야가 지어지고 기온을 찾아든 사람들 덕에 석첩이 깔리고 벚꽃과 버드나무가 심어져 지금은 에도시대의 느낌을 간직한 길 중에 하나가 됐다.
색감이 다양하지 않던 에도시대 느낌의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은 색깔 하나씩을 더하고 있었다. 한쪽에선 이제 막 결혼을 위해 웨딩촬영을 하는 예비부부들이 생동하는 색상을 선사하고, 그 곁을 조심스레 그리고 신속하게 지나는 관광객들이 어우러지며 거리엔 활력이 느껴졌다. 그 곁을 살며시 지나는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의 마이코가 스치듯 강렬한 색 하나를 더한다. 무채색 배경에 흩뿌려진 듯한 색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거구나 생각하고 걷는데 시구인 듯한 글 귀가 적힌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부터 찍고 나중에 찾아보니 교토가 좋아 교토에서 살았던 시인 요시이 이사무(吉井勇)가 1916년에 지은 시였다.
かにかくに 어떻든 간에
祗園はこひし 기온은 사랑스럽다
寢るときも 잠들 때도
枕のしたを 베개 밑으로
水のながるろ 물이 흐르나니
어떤 이는 요시이 이사무가 기온시라카와의 흐르는 물을 기막히게 멋진 시구로 표현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실제로 그가 살던 방의 바닥 바로 아래서 물소리가 들렸다고도 한다. 요시이 이사무는 그가 적은 시가 이처럼 다양한 해석을 낳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까?
표현의 진실이 무엇이든 재잘거리는 베개 밑 시라카와와 대화를 한 시인에게 동질감을 느껴본다.
혼자 걷는 물 위의 길에서 난 외로움을 탄 적이 없다. 하지만 도심에 흘러드는 기온시라카와의 길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사람이 사람을 외롭게 하는구나’
점점 말라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떤 인생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길이 되기도 하고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만 아직은 부족한 듯싶다.
살다 보면 소외되고 뒤쳐진 듯한 느낌을 받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속상하지만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그런 느낌도 사치더라. 그때서야 비로소 급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돌아본다. 놓쳤던 시간과 사람들, 외면했던 것, 그냥 흘려보냈던 스스로의 존중에 대한 아쉬움이 한켠에 쌓인다.
흐르는 물과 대화하 듯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여유를 더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