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를 닮은 커피

이탈리아 베네치아 Italy Venezia | 유럽 카페의 탄생

by 비오

커피가 순례자 혹은 아랍을 방문한 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들어 온 것은 오래전이었지만, 유럽에 최초로 선적된 그린빈이 들어온 곳은 1615년 베네치아였다. 이 때 베네치아에 들여온 것은 레반토 상인들이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소아시아와 고대 시리아 지방의 동지중해 연안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의해 통일되고 안정된 치세를 기반으로 상업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했던 유럽의 상인들이 레반토 상인이다. 레반토의 어원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의 ‘해가 뜬다’라는 뜻을 가진 lever, levare에서 유래해서 그 의미가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후에 이를 Levant로 불렀다.


[그림1] 레반토의 길거리 커피 상인, 1714.


레반토 상인들에 의해 이동된 커피는 다소 복잡한 이동을 하며 베니스로 전달되었다.

메카 근교에서 재배한 커피가 배 편으로 수에즈①까지 가고, 수에즈에서 낙타를 이용해 알렉산드리아②까지 옮겨졌다. 이집트에서는 이집트의 상인들이 운영하는 창고에 보관했다가 베네치아의 상인이 오는 시즌에 베니스③로 옮겨졌다.


[그림2] 이탈리아로 들어온 커피의 흐름


베네치아 상인들은 베네치아 공국과 사업 거래가 가장 왕성했다. 하지만 커피 무역 초기에 상인들에겐 어려움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대량으로 들여온 물건의 가격 수준 차이로 자신의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 커피는 유럽에선 아직 이렇다 할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 판매가 부진했던 것이다.

아랍에서는 이슬람 신비주의에 의해 ‘검은 잠잠성수’로써 종교적 제의와 함께 급속도로 퍼졌지만 유럽에선 커피가 이런 식으로 소개되어봐야 별로 반응이 없을 것이란 건 뻔한 사실이었다. 당시 유럽은 알코올(특히 맥주)로 휘청거렸다. 하루에 소비량이 아이들을 포함한 인구가 한 사람당 3리터 정도의 소비량이었다고 하니 이는 어마어마한 섭취량이다.


이에 착안해 상인들이 흥청거리는 사회에 반문을 던지며 만들어 낸 커피의 이미지는 ‘이성의 리큐르’ 혹은 ‘안티알코올’이다. 술 같은 음료지만 알코올이 없고 술과 같은 각성효과는 있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일깨우는 음료라고 소개한 것이다.

알코올 뒤에 숨어 사회를 비관하기 보다는 알코올은 아니지만 비슷한 효과를 가져다 주는 비 알코올 음료로 시도 때도 없이 휘청거리는 사회의 문화와 관습을 바꾸어 보자란 말을 하고 나선 것이다.


베네치아로 들여 온 커피가 처음부터 카페에서 판매되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엔 레모네이드 가게에서 판매되었다. 아랍의 화려한 규모의 카흐베하네의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이 음료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지에 대한 것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1720년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 아케이드 밑에 유럽 최초의 카페가 등장한다.


카페 플로리안


[그림3] 카페 플로리안 모습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졌고 18세기 말까지 카페가 가장 많았던 곳은 피렌체라고 한다.

이탈리안에게 카페는 ‘상하 계급에 상관없이 커피 한 잔 값이면 하루 종일이라도 지낼 수 있었던 평등한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들어온 이탈리아의 커피는 이후 에스프레소(express 급행의, 신속한) 머신의 보급과 함께 출근길에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빠르게 마시고 출근길을 재촉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혔다.


제복에 의해 탄생한 커피 그리고, 그 이름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곳에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조반니이고 그는 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날이 많았고, 짐승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녔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런 그를 성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바로 San Francesco d’Assisi(1181 ~ 1226)이다.


[그림4] 프란체스코 성인


그의 사후 그의 정신을 본받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결성한 수도회가 있었는 데 그것이 바로 프란체스코 수도회였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마테오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성 프란체스코가 사용했던 모자 끝이 뾰족한 두건을 사용하지 않는 수도회에 강한 불만을 품고 교황이 있는 바티칸에 탄원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른 수도사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고 바티칸은 이를 중재하기 위해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마테오와 그를 따르는 수도회의 일부를 따로 분리해 새로운 수도회를 만드는 것에 승인을 해준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수도회가 Cappuchin 수도회이다.

그들은 프란체스코 성인을 본 받아 그가 입었던 모자 끝이 뾰족한 망토를 입은 수도회가 된 것이다.

카푸친 수도회는 음주를 ‘악’이라 규정짓고 음주를 금지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흡사 이슬람 신비주의자 들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후에 카푸친 수도회 수도사들을 닮은 커피가 등장했는데 그 이름이 카푸치노이다.

카푸치노의 색깔은 제의의 색깔과 같고 커피 위에 올리는 거품의 모양은 그들의 모자끝을 닮았다 한다.

기록은 찾지 못했지만 카푸치노의 탄생은 커피를 사랑하는 수도사들이 장난스럽게 만지다가 만들었거나 그들의 모습을 본 이가 닮은 커피를 만들었거나 하지 않았을까? 한 잔의 커피에 수사들의 익살 혹은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림5] 카푸친 수도회 수사들


지금도 카푸치노를 제대로 만드는 카페에선 수도사들의 제의를 걸어놓고 카푸치노의 색을 제의 색깔에 맞추어 커피의 양과 우유의 양을 조절하여 만들고 커피 위 거품도 제의 모자 끝 모양과 같게 만든다고 한다.

커피를 만들면서 오래된 옷을 보고 만든다는 건 어쩌면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며 카푸치노를 만드는 이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카푸친 수사의 제의와 색상도 모양도 같아야 해.
그래야 살아있는 카푸치노 맛을 낼 수 있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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