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Europe | 커피가 퍼지기 시작한 유럽의 모습
커피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유럽엔 마시는 것에 있어선 이름까지도 마신다(Bibere, 라틴어)라는 이름의 터줏대감이 버티고 있었다. 7000년 전 맥아빵을 먹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마셨을 것이라 추정되긴 하지만 이집트에서 마신 것으로 기록된 맥주가 유럽 전역에 퍼져 식습관을 좌우하고 유럽인들 삶 전반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이 여흥을 위해 마시기도 하고 벌레 물린 곳에 바르거나 온갖 병에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던 것 처럼 중세의 유럽도 맥주가 밥처럼 약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맥주에 달걀을 넣고 걸죽하게 만들어 빵 위에 부어먹는 것은 유럽 대륙의 전형적인 아침식사로 독일사람들은 이 음식을 1700년대까지 즐겨먹었다고 하며, 약을 포함해 모든 것에 술이 들어갔다. 밥과 약에 모두 쓰인 것으로 보아 당시 맥주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는 음료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음식보다는 맥주에 의지해 살아갔다.
플라쿠토무스, 1551년
로마군이 마셔대던 맥주파티 풍습은 전 유럽에 전해져 파리에선 종교와 관련된 100일 정도 되는 휴일에 마라톤 음주 경연대회가 개최되었고 평소에 술을 잘 못 마시던 사람들은 여기에 참가하는 것을 즐겼다. 당시 음주는 어느 정도 부를 가진 사람들의 향유물이었는지 ‘곤드레만드레 취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 ‘군주처럼 마시다 drunk as a lord’ 라고 쓰일 정도였다고 한다.
아침에는 맥주, 점심에는 에일 맥주, 저녁에는 흑맥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기고 북유럽 사람들은 하루 평균 3리터, 영국의 서식스 지방의 수도사들은 하루에 캔 열두개 분량에 해당하는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맥주는 그들의 삶을 채웠고 채워진 만큼 유럽은 흔들거렸다.
술에 도취된 유럽은 안으로 부터 자성의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시작한 카톨릭에 대한 개혁은 무분별한 면죄부 발행 다음으로 술을 공격 목표로 삼았고 커피를 즐겼던 카푸친 수도회는 돼지머리에 새의 발톱을 한 ‘술의 악마’를 그려 붙이면서 음주대회를 금지하기도 했다.
막 퍼지기 시작한 커피는 자성의 소리에 탄력을 받아 그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반역의 포도가 품은 달콤한 독약이
온 세상을 짓밟았을 때...
커피가 들어왔다. 진지하고 건전한 음료이자
속을 치유하고 천재를 더욱 명민하게 만드는 음료였다.
익명의 어느 청교도 신자, 1674년
금주를 표방하는 청교도들은 그들이 ‘흑포도주’라 별칭한 커피를 신이 내려준 음료라 칭송하면서 알콜에 쩐 사람들을 치유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성직자와 귀족에 대항했던 제상계급인 중산층 시민 부르주아 Bourgeois 들은 ‘커피는 노동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음료’로 환영했다. 그들의 일을 해줄 노동계급이 술을 마시는 것 보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욱 이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남의 장소도 술집에서 카페로 바뀌었다. 오스만튀르크의 카흐베하네를 닮아 계층에 상관없이 시민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새로운 장소, 예술가와 과학자가 모여 신세계를 논의할 수 있는 곳 그래서 항상 깨어있는 장소에 깨어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맥주를 마셔 축적된 알코올과 탄산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무기력감과 도취감은 신체와 정신을 마비시키고 있었기에 유럽 전역에 퍼진 이 습관을 치유하면서 혼란을 주지 않을 대안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커피는 마시는 즉시 술을 깨우거나
만취하지 않은 사람이 정신을 맑게 해준다.
쉴베르테뒤푸(Sylvester DuFour)
새롭고 신기한 커피, 차 그리고 초콜릿에 관하여
Traitez nouveau et curieux du cafe, du the, et du chocolat
커피는 유럽에 버티고 있던 터줏대감과 경쟁재하며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벼운 존재감을 벗어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