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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여정

커피 성인에 의해 인도에 핀 커피 꽃

인도 India | 티피카의 탄생

by 비오


커피 성인에 의해 인도에 핀 커피 꽃 내용 요약


1665년 어느 순례의 달 ذو الحجّة | 둘 힛자, 이슬람력 12월에 이슬람 제1의 성전 메카 مكة المكرمة | 마카 알-무카르라마: 고결한 도시 에는 발딛일 틈 없는 인파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슬람 신도는 살아가는 동안 다섯 가지 의무를 짊어지는 데 그 중 메카로 가서 순례 حج | Hajj 하지 하는 것은 다섯 번째이다. 그들은 아마도 매일 메카를 향해 5번 씩 기도를 올리며 카바 الكعبة | Kabba 신전을 참배하는 이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인도-무슬림Indian Muslim이자 학자인 바바 부단Baba Budan도 순례의 날을 학수고대하며 교역로를 따라 머나먼 여행을 거쳐 메카로 와서 순례행렬에 참여했다.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이스마엘에게 물을 구해주기 위해 7번 왔다갔다한 것을 떠 올리며 순례의 법도대로 카바 성전을 7번 돌고 카바 동쪽의 벽에 박혀 있는 검붉은 돌 الحجر الأسود | al-Ḥajar al-Aswad 에 입맞춘 후 바바부단은 잠잠 우물로 향했다.


[그림 1] 메카의 카바성전과 성스러운 검붉은 돌, 잠잠 우물


메카의 성지 순례 하지(Hajj) 일정

첫째날
1. 카바 신전 7번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 타와프
2. 미나 평원으로 이동해서 기도하고 꾸란을 읽는다.

둘째날
3. 예언자 무하마드가 마지막 설교하던 아라파트산 등정

셋째날
4. 무즈달리파 돌산으로 이동해 다음날 사용할 돌 49개 준비

넷째날
5. 미나평원의 자마라트에서 악마를 상징하는 세 개의 돌기둥을 향해 돌을 던진다.

다섯째날
6. 메카로 돌아와 다시 카바를 돌면서 순례를 마무리한다.


목숨을 건 성스러운 범죄

잠잠 우물물을 마신 그는 아마도 여러가지 상념에 빠졌을 것이다. 잠잠 우물물에 비유되는 성스러운 음료를 위해 그는 목숨 거는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목숨을 바쳐 원했던 성스러운 음료는 바로 커피이다.

먹지도 않고 밤새 기도하는 수피(Sufi |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은 욕구를 없애주는 커피를 성수처럼 마셨다. 커피의 각성작용과 식욕을 억제하는 효용이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커피는 수피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을 돕는 음료였다. 게다가 검은 빛깔 원두는 카바 신전의 검은 돌을, 원두로 추출한 커피는 잠잠 우물물의 성수를 닮지 않았던가.

인도-무슬림이면서 수피(Sufi)였던 그에게 커피는 숙명과도 같았고 커피가 없는 고국으로 커피씨앗을 가져가서 온 나라에 퍼트리는 것은 범죄이지만 성스러운 소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메카를 포함해서 커피를 교역하는 항구는 생육할 수 있는 커피가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발각시에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중형을 내리는 터였던지라 바바부단의 심경은 더욱 복잡했을 것이다.

경작지에서 생두를 구하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병사들이 지키는 국경에서의 몸 수색이 문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일일히 수색할 수는 없는 데다 승려이니 옷까지 벗겨서 몸수색을 하지않을 터. 바바 부단은 먼저 어렵사리 생두를 구했다. 그리고 궁리끝에 긴 면 조각을 구했고 생두 일곱알을 셌다. 일곱알은 메카에서 신성한 숫자이니 신은 나를 보호해주시겠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웃옷을 벋고 구해 온 면 조각에 생두를 넣어 배에 둘러 묶었다. 그리고 다시 겉옷을 입었다. 감쪽같았다.

그렇게 바바부단은 국경을 넘었고 자신의 고국 남인도 현재 카르카타카 주 지역에 존재했던 마이소르(Mysuru) 왕국으로 돌아왔다.


[그림 2] 메카에서 인도의 미소르로 이동


바바부단은 커피가 고원에서 잘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의 순례길을 다녀오며 커피농사를 눈여겨 보아둔 것이다. 그는 해발 1800여 미터의 찬드라기리(Chandragiri | 찬드라언덕)에 가지고 온 생두를 심었다. 그리고 정성껏 가꾸어 얼마지나지 않아 커피나무가 찬드라기리를 덮었고 후에 인도 남부 말라바르 지역까지 퍼져 1670년부터 인도는 본격적으로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후에 바바부단의 성스러운 행동을 찬양한 이들은 찬드라기리의 이름을 바바 부단 기리(바바부단 언덕)으로 바꾸었다 한다.


몬순이 만들어 낸 커피

말라바르(Malabar)까지 퍼진 인도의 커피는 1670년 부터 유럽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말라바르 해안에서 출발한 목선은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유럽에 도착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길고 긴 항해 때문에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 환경이 취약한 배의 화물칸이 적도의 해풍을 만나 습하게 되면서 생두가 자연발효된 것이다. 이렇게 목선 안에서 발효되어 유럽에 도착한 인도산 커피는 굉장히 독특한 향미를 품게 된다. 꿉꿉한 느낌의 곰팡내가 나면서 약간 톡쏘는 듯한 이 특유의 독특함을 유럽인들은 사랑했다. 그들에게 인도산 커피는 동양의 이국적인 향과 해풍을 담은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림 3] 인도 말라바르 지역과 일반 생두와 몬순 커피 생두 비교


이후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유럽 수출 항로의 거리가 단축되고 빠른 증기선이 도입되어 더 이상 이 독특한 커피의 맛도 볼 수 없었던 유럽인들은 이 커피의 향수를 잊지 못해 계속해서 요청을 했고 인도 커피 농장은 이에 화답하며 커피의 생두를 인도의 남서 계절풍 몬순(Monsoon)에 의도적으로 노출시켜 숙성한 생두를 수출했다. 이 커피의 이름이 몬순커피이다.

생두를 펼쳐서 말릴 때 일부러 습기에 노출시키고 삼베자루에 담아두면 6주 정도 후에 몬순 바람과 습기에 의해 누렇게 변하고 부피가 팽창되어 산도(acidity)가 줄어들어 세계에서 산도가 가장 적은 몬순커피가 탄생된다고 한다. 인도 남부 말라바르는 현재도 몬순커피를 가공하고 있다.

몬순 커피와 비슷한 탄생의 역사를 가진 홍차는 중국에서 배에 싣고 유럽으로 가던 녹차가 적도의 뜨거운 태양열을 받아 발효되어 만들어진다고 한다. 발효라는 공통된 특성때문인지 북인도에선 짜이(홍차)가 남인도에선 커피가 사람들의 생활 속 깊숙히 녹아들어가 있다고 한다.

바바부단이 목숨걸고 가지고 들어 온 생두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인도 남부지역으로 퍼져갔다. 바바부단이 가지고 온 커피씨앗은 에티오피아 원종이 예멘으로 건너와 토속종이 된 예멘종 생두였지만 테루아(Teroir | 환경)가 다른 인도의 땅에서 또 다른 종으로 길들여지고 있었다.

커피 성인의 성스러운 범죄로 얻어진 인도의 커피 씨앗이 마르티니크로 건너가 중남미의 티피카(Typica) 종으로 거듭나기 위한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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