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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Sep 04. 2017

길 가지에 피어난 마을 열매

Simplicity…
time to think, time to sense
단순함… 생각할 시간, 감각할 시간


목적을 가지고 어딘가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 의해 밟고 다져져 길이 만들어진다.

가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길은 넓어지고 넓은 길일수록 이쪽저쪽으로 더 많은 작은 길이 생긴다. 큰길에서 마을의 좁은 골목의 고샅길을 지나고 나면 산기슭 비탈진 자드락길이 나오고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모롱이를 돌면 낭떠러지를 끼고 있는 낭길로 사람들은 목적을 위해 걸으며 길을 냈다.  

여러 길을 따라 물자와 정보가 흘러 사람들의 삶이 건강해지고 윤택해졌다. 그러고 보면 길은 나무와 닮았다. 큰 줄기에서 작은 가지가 뻗어가고 그 길을 따라 영양분이 흐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본 마을까지 이르는 길


어디에나 길은 있고
어디에도 길은 없나니
노루며 까막까치
제 길을 열고 가듯
우리는 우리의 길을
헤쳐가야 하느니

‘지쳐 누운 길아’ 중에서, 시인 장순하


기원전 1900년 고대에 발트해 침엽수 송진이 굳어져 생성된 호박을 지중해 지역으로 실어 날랐던 호박길(Amber Route)은 북해(North Sea)와 발트해(Baltic Sea) 연안에서 수로와 육로를 거쳐 이탈리아와 그리스, 이집트까지 실어 날랐다. 이집트의 파라오의 묘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주술적 효력이 있다고 믿은 모양이다. 흑해(Black Sea)에 도착한 호박은 이어진 또 하나의 교역로였던 비단길(Silk Road)을 통해 아시아까지 이어졌다 한다.  

중국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거쳐 지중해로 비단을 실어 날랐던 비단길은 총 6,400Km에 다다른다. 비단길과 유사한 경로로 종이 만드는 기술도 전파되었기에 그 길은 종이길(Paper Road)이기도 하다.

종이 만드는 기술은 아랍을 거쳐 12세기에 유럽에 전해져 인쇄술과 더불어 지식을 전파해 세상을 밝혔고 비단은 로마까지 팔려갔다.


비단길


총 8만 킬로미터의 도로에 군용 도로만 29개에 달하는 로마길(Roman Road)은 물자가 흘러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파괴를 위한 군용 물자가 투입된 길이기도 했다. 로마제국엔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지만 그들에게 당하는 속주와 식민지 사람들에겐 길 자체가 공포였을 것이다.

마을과 마을이 나라와 나라가 이어져 만들어진 길은 어딘가로 가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더없는 축복이었지만 악의를 가진 이방인의 침략을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원주민들에겐 두려움에 대상이었을 것이 자명하다. 길을 따라 들어오는 재앙을 피하고 싶었던 이들은 길이 없거나 길이 모진 산으로 피신을 해야만 했다. 스페인에 의해 유린당한 남미에는 원주민 순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콜럼비아의 나부시마케(Nabusimake)에는 산으로 피신해 용케도 순혈을 지키며 사는 부족 아루아코족(Arhuaco)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루아코족은 산의 원래 주인인 자연(대지=어머니)을 해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원주민의 문화와 이방인의 문화가 뒤섞인 삶터들은 사람이 가진 지문처럼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갖고 대도시부터 아주 작은 마을까지 다양하게 형성된다.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처럼…


얼마 전까지 여행은 유명한 명소들을 구경하며 다니는 관광(觀光)과 아낌없이 쉬는 휴양(休養) 이렇게 크게 두 종류라 규정했더랬다. 하지만 40일간 과장을 조금 보태 1000Km 정도 되는 스페인 북부의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을 걸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길을 걷는 여행이 하나 더 보태진 것이다.

그것은 유명한 명소를 보며 다니는 것도 아낌없이 쉬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하루를 꼬박 걸으며 몸의 고통에 눈뜨고 날것의 마음을 느끼면서 솔직해지는 나를 만났다. 아주 작고 볼 것 없는 마을이라도 안도하는 마음과 포근함으로 반가웠다. 호텔처럼 료칸처럼 고급스럽고 깨끗한 잠자리는 고사하고 유럽 빈대가 물 수 있다는 경고문이 방안에 떡하니 붙어있어도 잠잘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한 번 잠들면 깨지 않는 내가 하루를 걷고 나면 발이 만신창이가 되어서는 새벽에 깰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하지만 그 새벽 통증이 치유의 통증이라는 것을 아침마다 거의 멀쩡해져 다시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된 발이 증명했다. 남아있는 통증을 안고 걸으면 점차 적응되어 생각들이 떠오르고, 숲의 모습과 소리에 다시 감각들이 살아나며 걸을 수 있는 기운이 내 안에 차올랐다. 그러다가 목적지에 거의 다다르면 또다시 두 발이 지쳤다 울부짖곤 했다.

걷는 여행에서 길은 그렇게 단순했다.

가야 할 목적지가 있고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생긴 마을은 저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이름으로 열매처럼 길 가지에 달려있고 그 열매는 어떤 의미로든 달콤했다.

그 길, 그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길’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주민, 유럽에서 온 사람, 아시아에서 온 사람 등 그 길위에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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