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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1. 2020

1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남자

ep. 1 혼자 잘 노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


 역마살도 이런 역마살이 없다. 1년에 한 번씩 전국을 떠돌다니. 상위 1% 역마살이다. 이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을까?     


 장교의 생활이 어떤지 잘 모르고 멋있어 보이는 것 '', 선배들 꼬임 ''에 넉넉지 않은 가정경제를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 더해 사관학교에 들어왔는데,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 임관하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단다. 그것도 근처가 아니라 동해에서 서해로 갔다가 다음은 이름 모를 섬으로, 그리고 또 전국팔도로 정처 없이.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되었다. ‘결혼하고 가족이 같이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2017년 퇴임한 이순진 합참의장은 퇴임식에서 42년간 45번의 이사를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교의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이삿짐을 풀 새가 없다. 지금은 거주 안정성을 고려해 2년 단위로 이동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2년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지내야 한다.       


 임관하고 나서 선배들의 삶을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2000년 중반이던 그 시절만 해도, 남편을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는 당연하고, 중학생도 같이 다니는 경우가 흔했다. 어떤 자녀들은 초등학교 6개, 중학교 3개를 다녔다고도 한다.      


 선배들에게 물어봤다. 애들이 이렇게 전학을 많이 다녀도 괜찮나요?

 ‘별다른 수가 없어.’ 그 시절 지금과 달리 관사 입주요건이 엄격했다. 전출 가면 바로 이사를 해야 했고, 개인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나마 학기 시작에 맞춰 이동할 수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맛을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정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선배들은 ‘혼자 잘 노는 능력’이 있는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혼자 잘 노는 사람이라. 무슨 말일까?

 새댁이 남편 따라 낯선 땅에 온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다. 그런데 남편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해 쓰러지듯 자고 다시 새벽에 나간다. 여인숙 정도다.


 최악은 더 있다. 함정을 타고 출동 나가면 짧게 2주, 길게 서너 달을 집에 못 들어오기도 한다. 긴 시간을 혼자 지내야 한다. 거의 납치 수준이다. 혼자 잘 놀지 못하면 외롭고 힘들어 우울감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가정에 큰 위기가 찾아온다. 선배들의 살아있는 조언이었다. ‘혼자 잘 노는 사람’은 여러 선배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로 터득한 ‘안정적 가정생활’을 위한 깊이 있지만, 씁쓸한 조언이었다.         


 선배들을 지켜보니, 가정의 안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만이라도 같이 생활하며 정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결혼을 하기도, 아이를 낳기도 전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청년 군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고민 중 하나다.


 그들에게 언제까지 '혼자 잘 노는 사람'을 만나라 할 것인가. 해결책이 없다면 보완책이라도 필요하다. 외적 보완이든 내적 보완이든.


 외적 보완은 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변화가 더디기에, 내적 보완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그 옛날부터 지금, 앞으로도 이어갈 너와 나의 고민거리 앞에 오늘도 가슴 한켠이 묵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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