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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30. 2020

모든 별거에는 사연이 있다.

프롤로그


「별거」라는 단어는 '불안'과 '불편'을 품고 있다.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같이 살아야 하는 당위성이 전제되어 있고, 큰일이 벌어지기 전의 전조라는 우려도 섞여있다.

 ‘각방’보다 위기가 고조된 개념으로, 가정법원에서야 만날 수 있는 사이 또는 행정적 조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느낌도 있다.


 ‘동거’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동거’는 뭔가 하면 안 될 것 같은, 어설프고 풋냄새나는 느낌이라면, ‘별거’는 결국 하게 된, 전운이 감도는 사골국 느낌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며 남편과 아내가 직장 문제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말부부’는 어느덧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유형이 되었다.   


 군에서는 주말부부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주말마다 만날 수 없기 때문일까? 가족의 거주 형태는 보통 동거/별거로 구분한다. 실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군인은 ‘월말부부’도 유지하기 힘들다. 비교적 최근 ‘일과 가정의 양립, 개인 휴가 사용권 보장’이 강조되며 월말부부, 운 좋으면 격주말부부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나도 아내와 별거 중이다. 군에서 구분하는 범주에선 별거부부인데, 사회적 ‘별거’부부와는 조금 다르다. ‘사이좋은 별거부부’라고 할까. 가족과의 시간, 휴가 사용이 권장되는 급격한 군 내 환경변화를 두 손 들어 환영하며 2주에 한번 정도 가족들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지역을 이동하는데 제한이 많아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군은 다수의 인원이 밀집된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감염병에 극히 취약한 환경이다. 따라서 감염병 예방에 있어 일반 사회보다 한 두 단계 강화된 통제와 규제를 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몇 달간 집에 가지 못하는 일이 늘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어릴 때 가정환경을 기재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성실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슬하에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을 써냈다. 실제 그렇든 그렇지 않든  희망하는 가족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며 세상엔 수많은 거주 형태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집에 거의 오지 못하고 엄마와 살거나, 엄마는 오지 못하고 아빠와 살거나, 부모 없이 할머니 집에 살거나, 고모나 삼촌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살기도 한다.

 어떤 형태든 각자의 사정과 환경 결합해서 내린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가족의 주거방식 문제로 고민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떨어져 사는 가족의 생활과 애환을 나눠보려 한다.


 결혼과 동거, 별거의 기록이자 앞날이 불투명한, 30대 가장으로의 생각과 근심의 흔적이다.  


  다양한 주거형태와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응원하며 글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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