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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24. 2020

엘리베이터를 회장님 처럼 탔다

생활 속 작은 배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주택이거나 걸어서 올라가는 계단이라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족을 배려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살 때에도 보통 가족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다. 버튼을 눌러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 엘리테이터를 타고 내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짐도 많아졌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도 내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현관에서 화장실이 급해지기도 하고, 신발 신는 데 10분이 걸리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오래 잡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기에, 한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나눠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아이들과 아내를 현관 입구에 먼저 내려주고, 나는 주차 후 짐을 들고 올라가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여느 날과 같이 아내와 아이들을 현관 입구에 내려주고, 빈 공간을 찾아 차를 주차한 후 엘리베이터 홀에 들어섰을 때 엘리베이터가 딱 1층으로 내려온다. 아싸. 땡잡은 기분이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야 1~2분일 텐데 기분으로는 10분 이상을 번 느낌이다. 회장님 처럼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는 기분이다.  처음엔 그냥 운이 좋은 줄 알았다.


 처갓집에 간 어느 날, 아내와 내가 먼저 올라가고 장모님이 조금 후에 따라오실 상황이 생겼다. 아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1층을 누르고 내린다.


이랬던 거구나.


 엄마가 뒤에 우리가 올 때 이렇게 내려놓으시거든

 아내의 말을 듣고 장모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뒤에 따라오는 가족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내려놓거나 올려놓기,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배려다. 알고 난 다음부터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있으면 기분이 좋은 건 물론, 그 마음이 생각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사무실에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내가 근무하는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2대 있다. 아침 일찍 엘리베이터 홀로 들어서면 2대 모두 고층에 올라가 있는 경우가 다.


 이른 아침의 특성상 내려오는 사람은 없고 1층에서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터, 일단 2대를 모두 1층으로 내린다. 먼저 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뒤에 온 엘리베이터는 다음 사람을 위해 1층에 대기시켜 둔다.


 최근엔 가족들의 배려를 참고해, 사무실이 있는 층에서 내리기 전 1층을 눌러 놓는다. 뒤에 오는 사람이 1층에서 대기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길 기대하면서.


 1년 가까이 엘리베이터를 내려주고 있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침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와 있는 경우가 많아짐을 느낀다. 어떤 때는 엘리베이터 홀에 들어서면 문이 딱 열리면서 빈 엘리베이터가 나를 반긴다.


 마치 나를 위해 불러준 것처럼.




 이른 아침, 누군가 기분 좋아질 걸 상상하는 나도 기분이 좋다. 작지만 쏠쏠한 즐거움이다.


 더 많은 생활 속의 작은 배려들을 찾아내 기분 좋게 배려하고, 같이 미소 짓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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