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하는 장거리 이동
장거리 이동은 힘들다. 힘들다는 데에는 신체적인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포함된다. 혼자 가도 힘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가보면 혼자 가는 것은 힘든 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을 싫어하고, 지겨움을 견디지 못하며, 멀미를 할 수도 있다.
지난 가을, 세 아이와 함께 하는 첫 장거리 이동을 시도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거주하던 경기도 처갓집에서 내가 사는 시골로의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나름의 전략과 전술을 세워 덜 지겹게 올 수 있었다. 고민하면 답이 보인다. 정답을 찾진 못하더라도 확실히 틀린 건 피할 수 있다. 성공의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 삶의 지혜 아니겠는가.
휴게소로 여행 가자
처갓집에서 시골은 운전으로만 4시간 소요된다. 한두 번 쉬면 5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세 아이를 데리고 2시간 이상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세 살인 막내는 장시간 차에 타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지겨움을 덜기 위해 중간 기착지, 휴게소 여행을 준비했다.
먼저 아이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준다. 휴게소로 여행 갈 예정이며,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해보자고 운을 뗐다. 요즘 휴게소는 잘 꾸며져 있어 외부 휴식공간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쌩쌩한 아침에 출발해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낮잠 자며 도착할지, 조금 피곤한 상태에서 출발해 낮잠을 먼저 재울지, 아주 밤에 이동해 재우면서 갈지에 따라 세부계획이 달라진다.
경험상 차에 타면 일단 졸리기에 한 명이라도 먼저 잠들어버리면 잠이 꼬인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아침 먹고 놀다 피로감이 살짝 오는 10시 정도에 출발해 차에서 놀고(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30분 정도 지나 한 명씩 꿈나라 여행 후 휴게소에 들르는 것이었다. 출발 후 계획대로 순조롭게 한 명씩 잠들었다. 셋째, 둘째, 첫째까지 잠이 들고, 출발한 지 2시간이 좀 지난 시점에 하나둘 깨어나 눈에 보이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 의외의 재미가 있다.
휴게소를 목적지로 했지만 어느 휴게소에 갈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에 산책공간이 있을지, 볼거리가 있을지는 운에 맡겼다. 아이들이 완전히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차에 탈 수 있도록, 1시간 정도 놀다 갈 계획이었다. 휴게소에 내려 화장실로 걸어가는 길에 건물 뒤편에 꾸며진 정원이 보인다.
화장실에 들른 후 정원으로 가 나뭇잎을 보는데, 세모 머리 사마귀가 앞발을 치켜들고 나를 노려본다. 사실 나는 곤충과 친하지 않다. 어려서도 잠자리, 메뚜기 정도만 잡아봤지, 사마귀나 매미, 개구리 같은 난이도 중급 곤충도 굳이 잡지 않았다. 잡아도 별거 없다는 생각이 일찍이 들었고, 잡고 싶은 충동보다 만지기 싫은 거부감이 컸다. 누가 잡아 놓으면 옆에서 구경하거나, 내가 발견하면 굳이 잡지 않고 가까이 가서 눈으로 관찰하곤 했는데, 아이들의 재미를 위해 과감하게 다가갔다.
옆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잡아 사마귀를 조심스레 유도했다. 나뭇가지 위로 발을 치켜든 사마귀가 올라왔고, 아이들에게 ‘사마귀 잡았다’고 자신 있게 외쳤다. 아이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내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혹시 뛰거나 날면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도 기절할 것 같아 멀찍이 관찰했다.
첫째는 무섭다며 얼른 놓아주라 하고, 둘째는 ‘사마귀다’라며 즐거워하고, 셋째는 장난감쯤으로 생각해 만지려 들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사마귀가 가지를 타고 내 손 쪽으로 조금씩 기어올랐다. 첫째가 얼른 놓아주라며 아우성을 쳐, 못 이긴 척 수풀 속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잠자리가 날아간다. 그래, 잠자리 정도는 맨손으로 잡아야 면이 서지. 발소리를 죽여 사냥에 나섰다. 허리 높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잠자리의 뒤를 잡고, 오리걸음으로 나무늘보 기어가듯 살금살금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목적 거리에 도달한 후, 손가락 집게를 만들어 1cm/s의 속도로 목표물에 접근해갔다. 거리 30cm, 15cm, 5cm, 3cm, 집게 사이로 투명한 날개가 위치하는 순간 재빨리 집게를 닫는다. 잡히지 않은 반대쪽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건져 올려 소리쳤다. ‘잠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끼약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모두 모여들어 머리의 8할을 차지하는 눈을 관찰하고, 꼬리를 만져보며 둘째는 검지와 중지 사이로 날개를 잡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여치 두 마리를 추가로 사냥해 관찰했고, 첫째와 둘째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맨손으로 여치 잡기를 막내가 성공했다. 언니 오빠가 소리 지르며 도망가니 신이 난 막내는 손에 여치를 들고 언니 오빠를 쫓아다니며 가을 하늘 아래 시간은 훌훌 흘러갔다.
새로운 출발, 다시 처음처럼
다시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차에 타 출발을 준비하니 휴게소에서 1시간 10분 정도를 보냈다. 아이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다시 차에 탄다는 지겨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1시간 반 정도만 가면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앞으로 일주일간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계획인지 설명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휴게소 여행으로 4시간 거리를 지겹지 않게 올 수 있었다. 가을이라 수월했다. 여름이면 너무 더워 밖에 나가기 힘들었을 테고, 겨울이면 추워서 오래 있지 못했을 테다. 볼 것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절마다 그때그때 응용할 휴게소 여행법이 있으리라 믿는다.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생긴다.
살면서 계획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계획대로 되면 기쁘고 성취감도 느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휴게소 여행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기분 좋은 여행의 출발이자 발판이 되었다.
아이들과 장거리 이동, 휴게소를 잘 활용해 지겹지 않고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