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활을 쏴대던 부잣집 아들 다송이가 가짜 미술선생인 기정(박소담 역)과 면담(?) 후 거실로 내려와 두 손 모으고 세상 공손하게 엄마에게 인사하는 장면이다. 통제 불능인 줄 알았지만 이미 예의범절을 이해하고 있었고, 짧은 면담만으로 행동화할 수 있었다.
영화적 과장이 섞였지만, 비슷한 모습은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 집에서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혼자서 밥 한 숟가락 못 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혼자서 밥 한 그릇 뚝딱 해결한다. 해야 하는 상황과 환경이 조성되면 해내는 것은 어른과 아이가 다르지 않다.
시골생활을 시작하며, 환경 조성을 통한 건강한 습관들이기를시도중이다. 먼저 장난감 정리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다 꺼내 펼칠 기세다. 들어가는 건 없이 나오기만 하니 발 디딜 틈도 없어진다.
다시 봐도 놀라운 광경. 옷걸이에 아이가 걸려있는건 아님
어떻게 하면 정리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놀이방에서 장난감을 받아오고 반납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문화센터나 블록 놀이방에 가면 장난감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를 받아온다. 봉투에 들어 있는 장난감을 꺼내 놀고 나면, 다시 봉투에 담아 반납하고 다른 장난감을 받아온다. 지켜보면 모든 아이들이 규칙을 곧잘 지키고 있는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에서 봉투에 담기까지는 못하더라도, 큰 장난감들은 별도의 서랍이나 상자를 둬 놀고 나면 바로 정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놀다가 놔두고 다른 장난감 꺼내는 게 편하고 익숙하기에,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다.
헌데 ‘해야 하는’ 이유는 수시로 생겨난다. 이것저것 꺼내놓다 구성품을 잃어버리거나, 내용물이 모두 섞여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든지, 지나가다 정리 안 한 장난감을 밟고 넘어진다든지 하는 ‘정리해야 하는 이유’를 주기적으로 스스로 일깨워낸다. 정리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남겨진 과제다.
식스센스급 반전
다음은 먹는 습관이다. 아이들은 먹는데 집중하기 쉽지 않다. 말하고, 장난치고, 딴짓하기 바쁘다. 돌아다니면서 먹거나 밥에 흥미를 잃고 먹지 않다가, 나중에 간식을 찾는다. 식사나 간식을 포함해 모든 먹는 것은 식탁에서 먹도록 환경을 만들고 있다. 흘려도 바로 닦을 수 있고, 음식으로 어질러지는 공간을 제한할 수 있다. 집안에 음식 부스러기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치우기도 편하고 청결도도 높아진다.
식탁에서만 먹으니 TV를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아 먹는데 집중하고, 가족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도 생긴다.
생각해보니 이미 들어 있는 좋은 습관도 있다. 바로 손 씻기다. 어릴 때부터 외출 후 화장실로 곧바로 들어가 손을 씻겨 주었더니 이제 나갔다 오면 말하지 않아도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온다. 첫째가 그러니 둘째와 셋째도 졸졸 따라 화장실로 들어간다. 뒷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TV나 핸드폰에도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거실에 있던 TV를 없애고,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핸드폰 사용을 최소화했더니 아이들도 굳이 찾지 않는다. 하나씩 건강한 습관을 익혀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넘어 감동까지 느껴진다.
주변을 깔끔하게 하는등의 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셉테드(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 Design)라는 개념이 있다.
이를 응용해 헵테드(HHTED, Healthy Habit Through Environment Design)라 이름 붙여본다. 환경 설계를 통한 건강한 습관 길들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