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메이(첫째의 별칭)가 요즘 부쩍 돈 얘기를 많이 한다. 사람 없는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쏜살같이 달려가 발바닥 슬라이딩을 하며 스위치를 ‘탁’ 끄고는 ‘돈 낭비!’를 외친다. 양치하다가 물을 조금 오래 틀어놓으면 수전을 엄하게 내리며 ‘물 낭비!’, 숟가락질이 서툰 동생이 반찬을 떨어뜨려도 ‘돈 낭비!’를 외쳐댄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웃어넘겼는데, 점점 돈 얘기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학교에 매고 갈 가방을 하나 고르라고 했더니 어떤 게 더 싼 지 물어보고, 신발을 하나 사자고 해도 ‘돈 내야 해? 그럼 안 살래’ 라며 서글픈 결단을 내린다. 필요한 돈은 써야 한다고 말해줘도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린이집에서 돈과 절약 관련 교육을 받으며 관심이 ‘돈’으로 집중된 것 같다.
얼마 전 저녁 양치를 하고 자려는데, 아이들이 과일을 먹고 싶어 했다. 그럼 과일 먹고 다시 양치하자고 얘기했더니 양치를 두 번하는 건 ‘물 낭비’라는 게 아닌가. 이가 썩는 게 양치 천 번 하는 것보다 더 큰돈이 들어가니 양치해도 된다고 일러줬다.
지금 메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관사 안에 있어 친구들이 모두 군인 자녀들이다. 아빠들의 직업이 같다 보니, 아빠들 얘기가 화두에 오르기도 하는 것 같다. 메이가 엄마에게 ‘00이는 아빠가 바다 한가운데 있대. 그래서 다음 주까지 집에 못 온대’라고 해, 아내가 ‘메이는 아빠 매일 집에 와서 좋지?’ 물었더니, ‘근데 00이 아빠는 돈 많이 벌잖아’라고 했단다. 의외의 말에 웃음이 나면서도 메이가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짐작되었다.
친구의 부모가 집에 자주 오지 않는 아빠를 원망하는 아이를 달래려 ‘바다에 나가 돈 많이 벌어온다’는 답을 해줬으리라.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우리 아빠는 바다 한가운데 있어,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와’라는 말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아이의 말을 듣고 웃기게도 은근 경쟁심이 생기고 아이가 위축되진 않을까 염려 되었다. 소득 수준이 비슷한 관사 안에서도 이럴진대, 다양한 계층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경쟁심과 위화감이 작지 않을 듯 하다.
현명한 답변을 생각하다, 필요한 곳에 쓸 정도의 돈은 충분히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줬다. 메이가 가만히 듣고 있더니, 거짓말하지 말란다. 어떻게 보여주지? 통장을 보여줄까? 물으니 보여달란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니다 싶어 아빠를 믿으라 했다.
그러더니 급하게 하는 말이,
‘아빠 통장 보여줘, 책 얼마나 읽었는지 보고 싶단 말이야’
‘읭?’
아내와 나는 웃음이 터졌다.
작년부터 아이들이 책 보는 보람과 재미를 느끼도록 읽은 책 제목을 기록해 놓는 독서통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통장 보여줄까 하는 물음에 독서통장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푸하하하 맞아 아빠도 독서통장 쓰고 있는데 보여줄게’
아직 통장이라고는 독서통장밖에 모르는 친구가 돈 얘기를 이렇게 한다니, 그리고 그걸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니, 실소가 나온다.
잠시 진지해졌던 모드를 풀고, 메이와 독서 통장 대결로 이어가기로 했다. 돈이 쌓이는 즐거움 못지않게 지식과 지혜가 쌓이는 즐거움도 크다는 것을, 그리고 독서통장의 힘이 은행통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차츰 알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