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코치 Mar 02. 2021

똥 싸는 사람과 마주 앉는 것이 기쁨이 될 줄이야

 “아빠 나 진짜 큰 거 싸고 싶어”

응, 아빠도 진짜 큰 거 보고 싶다. 힘내 봐


흡, 끄으응. 뿌직. “아빠 봐봐 얼만해?” 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여 엉덩이 뒤로 변기 속을 내려다볼 수 있게 배려(?)해 준다. 새끼 구렁이 한 마리가 요상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오 좀 큰데 잘했어' 아이는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며 활짝 웃는다.


 똥 싸는 아이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에 처음 재미를 느낀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첫째가 기저귀 뗄 무렵 변기에 앉혀놓고 응원해주다 보니, 그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어 종종 마주 앉았다. 앞에 앉아 응원해주니 아이가 힘을 내는 듯했고, 다양하고 때론 놀라운 결과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저게 어떻게 아이의 엉덩이에서 나온 거지? 김밥만 한 녀석이 나 좀 보라며 들어앉아 있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다. 아니 하나의 기적이다. 몸을 뒤집고, 기어 다니다 일어서고, 옹알거리다 말을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인체와 생명의 신비에 감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귀엽게 어설플 때, 작은 일에도 마주 보며 깔깔거릴 때, 똥 싸는 모습을 마주 앉아 지켜봐도 아무 말 않을 때.      


 힘을 주는 모습도 다양하다. 첫째는 양손을 배 앞으로 모았다가 위로 올린 후 힘껏 내리며 ‘끄응’ 용을 쓴다. 둘째는 손바닥으로 양 허벅지를 부여잡고 이를 앙 다물며 밀어낸다. 막내는 내 손을 잡고 눈까지 마주치며 인상을 찌푸린다. 순식간에 빨개지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정말 잘 먹고 잘 싼다. 그 작은 몸에서 신진대사가 활발함에 감사하다. 어제 아침에는 3똥을 모아 변기 물을 내렸다.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막내가 싸는데 둘째가 줄 서서 기다리다 물 내릴 틈도 없이 바로 올라앉았고, 바지 올리고 거실로 달려가던 막내가 다시 돌아와 또 나올 거 같다며 줄을 서는 통에 세 똥이 모여 물을 한 번에 내렸다. 요즘 환경 지키기가 이슈라는데, 이렇게 한 번 동참하나 싶다.      


 사실 내 똥은 굵다.(뭔가 자랑 같지만 자랑은 아니다) 양도 많다. 생도 때부터 화장실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모았다가 한 번에 가는 것이 익숙해진 것 같다. 어떨 때는 변기를 가득 채운 녀석들을 보고 순전히 똥만으로 변기가 막히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다. 굵고 시원하게 싼 아이를 칭찬해주던 어느 날, 아이가 아빠 똥도 보여달라고 한다.


‘아.. 아빠 똥 진짜 굵은데 보여줄 수가 없네’ 그때부터 한동안 똥 보여달라고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한번 보여줄까 심각하게 고민도 해봤다가, 트라우마로 남을까 봐 참았다.

     

 아무튼, 아이들의 순탄한 신진대사에는 내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 아내와 구체적으로 얘기해본 적은 없기에, 아내가 ‘내가 더 잘 싼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변기에 앉아 힘주는 세상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쑥쑥 뽑아내는 녀석들이 기특하다. 마주 앉아 보는 빨간 얼굴에 묘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언제까지 마주 앉아 지켜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 둬야겠다.



그래서 오늘도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응원한다.


'이번엔 진짜 길게 한번 뽑아보자.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통장과 나의 통장이 가지는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