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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Mar 05. 2021

5살이지만 2년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지윤이가 민준이 좋아한대.’ 자려고 누웠는데 7살 아이가 불쑥 어린이집 연애 이야기를 꺼낸다. 연애 이야기는 누가, 언제 하더라도 호기심을 자아내는가 보다. 그게 내 아이 이야기라면 더욱더. 그래서 슬쩍 떠본다. 벌써 그런 얘기도 하는구나, 메이(첫째의 별칭)도 좋아하는 남자 친구 있어?


 ‘음, 나는 강우가 좋아’


 그래? 강우도 메이 좋아하는 거 같아?


 ‘아. 아니아니 강우는 예전에 좋아했고, 이제 민준이가 더 좋은 거 같애’

 벌써 복잡해진다.

지윤이도 민준이 좋아한다면서, 어떡한대.


‘나도 민준이 좋은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내일 민준이한테 고백해야겠다’ 깜깜한 방 안에서 눈이 번쩍 떠진다. 읭 고백? 그런 것도 알아? 물으니 메이가 당황해서 말이 빨라진다.


 ‘어머 내가 뭐래? 고백한대?’      


크킄. 숨죽여 웃는 소리가 어두운 방을 뒤덮는다.      


 몇십 년, 아니 어쩌면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은 말들이 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래’가 대표적인데, 아마 사람이 말을 하는 순간부터 이런 말을 주고받았을 것 같다. 까먹어서 그렇지 우리 모두가 그런 말을 듣고 자랐다. 유사한 말로 ‘요즘 애들은 빠르다’도 있다. 학습과 성장, 연애도 이전 세대보다 빨라진(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느껴진)다. 연애감정이 이제 7살까지 내려왔나 싶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첫째의 고백 다짐(?) 뒤에 이어지는 말이었다. ‘케빈(둘째의 별칭)을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대. 서윤인데, 작년 4살 때부터 좋아했대’ 이러다 조리원에서부터 좋아하는 날이 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5살 케빈을 2년째 좋아한다고 전해지는 여자아이에 대해 케빈에게 물어봤다.

     

케빈, 서윤이 어때?      


‘응? 누구?’  4살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여자 친구 있잖아, 그 친구가 케빈 좋아한다는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뭐야 벌써 진지하게 받아들이나?      

고민 끝에 내뱉는 말이 걸작이다.      


'그런 애 없는데?' 


크으. 시크하다. 이런 철벽남이라니.(아빠를 닮았나?) 하지만 현실은 산만 + 주변 파악이 안 된 결과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듯하다.(아빠를 닮았네)  서윤이가 알까 겁난다. 아니, 어쩌면 벌써 다른친구에게 마음이 넘어갔을런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결혼식 장면을 보면 신랑 신부의 심정이 어떨지 보다는, 양가 부모님의 심정에 더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지 그려본다. 뭔가 못마땅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누구라도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깊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는 감정이고, 현실로 다가오면 바뀌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성친구를 사귀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르겠다. 당황하지 않고 현명한 조언을 해주도록 미리 마인드 컨트롤을 해둬야겠다.




그래도 너무 빨리 오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은 꼬꼬마 껌딱지들 모습을 더 오래 보고싶은 마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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