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는 언제쯤부터 본격화되었을까? 지금의 30대라면 경험했을 1990년대와 2020년대의 육아환경, 그중에서도 아빠의 참여 수준을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 TV에서 본,아빠가 육아 휴직하고 평일 낮에 유모차 끌며 산책하는 북유럽 어느 국가의 신통방통한 이야기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2014년생인 메이(첫째의 별칭)가 두 돌이 채 안 되었을 무렵, 뱃속에 동생을 품고 있는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주말 아침, 기저귀와 물티슈, 과자와 음료를 소복이 담은 가방을 메고 메이와 단둘이 현관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게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화장실이 편하고 식당도 함께 있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곳곳에 키즈카페도 있어 엄마 찾아 우는 긴급상황도 대처할 수 있다. 그렇게 인근 쇼핑몰과 백화점 투어를 시작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유모차에 태워 잠도 재우며 메이와 여러 날을 함께했다.
2016년만 해도 남자화장실에는 아이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었다. 아이를 눕힐 수 있는 기저귀 교환대도 없어 화장실 대변기 뚜껑 위에 메이를 세워두고 기저귀를 갈았다.최신의 시설을 자랑하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때 생각했다. 육아에 아빠도 참여하는 사회분위기와 달리 아직 시설 수준은 미비하구나.
그런데 불과 5년여가 지난 지금은 어떤가.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는 물론이고, 가족화장실이 있어 아이들과 화장실을 함께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되어있다. 물론 아직은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국한되지만 앞으로 신설되는 시설에는 아빠의 육아 편의성이 다양하게 고려될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가족화장실을 몇 번 이용한 기억이 있어,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를 것이라 기대한다.
메이가 여섯 살이 되고 가족화장실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메이의 화장실 볼일을 마치고 나도 소변을 봐야 했다. 아이를 두고 어디 갈 수 없기에, 가족화장실 안에 있는 소변기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빠도 쉬 할거야. 뒤에서 잠깐만 기다려줘’
그렇게 뒤돌아서 소변을 보는데, 메이가 소변기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궁금해 못참겠다는 표정으로 소변기 안쪽을 들여다보려 한다. 황당한 상황에 웃음이 나왔지만 웃으면 더 할 것 같고, 꾸짖기도 그래 소심하게 손으로 가리며 반대쪽으로 몸을 트는데, 메이가 묻는다.
‘아빠!’
응?
‘손에서 쉬나와?’
방심하다 빵터졌다. 옆에서 손으로 가린 모습을 보니, 손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응 아빠는 손으로 싸. 멋있지?' 눈이 동그래지며 입이 벌어지는, 믿을 수 없다는 아이의 표정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웃을 일이 많다. 생각지도 못한 상상과 기발한 발상이 넘친다.이시대의 아빠들이 아이들과 부담없이 외출할 수 있도록, 아빠의 육아를 돕는 편의시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