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만 이 몹쓸 병에

만성 불평증(症)

by 박점복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양 쉬쉬하며 감추려다가 오히려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 아픈 결과를 맞고 만단다.


음습한 곳에서 자라는 이끼나 곰팡이류는 딱히 다른 퇴치법은 없다. 부드러운 듯 따뜻하지만 강한 햇살 몇 번이면 족하지 않던가? 제아무리 버둥거려 봐도 별무 효과일 뿐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는 특효약이란 얘기이다.


슬그머니 내게 찾아와선 나를 못 살게 하는, 고치기 쉽지 않은 「만성 불평증(症)」이라는 희한한 병에 걸린 사실을 차라리 동네방네 소문내기로 결심하니 마음은 한없이 평안하다. 역시 햇살 따사로운 곳에 드러내는 게 최선의 치료 방법인가 보다.


의사야 물론 아니지만 삶의 소중한 경륜 따라 더 완벽하게 치료법을 무료로 알려주실 동네 어르신도 여럿 계실 테고. 어눌한 데다가 투박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 효과는 완벽에 가까우니 어떤 과학적 설명이 가하단 말인가?


촌스럽다며 소 닭 보듯 구시렁구시렁 환자인 주제에 유식한 척 얼마나 유세는 떨어댔는지. 치료를 더욱 힘들게 하는 그놈의 얄팍한 착각에 허풍까지. 어떤 명의라서 감히 고치겠는가? ‘허허’로이 쓴웃음만 짓지 않을는지.


‘담배는 꼭 끊으시고 음식물은 채소 중심으로 가능하면 싱겁게 드세요’ 처방을 내놓지만 심드렁할 뿐이다. 그 정도는 벌써 다 알고 있다나 어쩌나 하면서.
‘규칙적 식사와 적당량의 운동도 체질화하시고요’ 당부 역시 콧방귀의 대상이긴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유한한 인생살이 남은 날 수만큼은 후회 없이 살겠다고 다짐에, 각오에, 굳은 결심까지 동원해 보지만 번번이 되는 일은 없다며 투덜거린다. 실은 된 일이 훨씬 더 많았음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데도 말이다.


여생이 한도 끝도 없이 길거라는 착각에 푹 빠져 살다가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라는 의사의 폭탄선언에 부랴부랴 호들갑을 떨어대는 걸 반복하는 우리 인생들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생각만으로도 겁이 덜컥 나는 걸 보면 무 섭긴 한 가 보다)


그나마 일취월장 향상되는 의학기술, 기분 좋게 불치병을 극복해 가는 쾌거에 안심은 되면서도 한편 이름도 특이한 희귀 질병 「만성 불평증(症)」에 걸리고 말았는데 처방은 있기나 한 건지.


창피를 무릅쓰고 널리 알려 속히 회복되는 게 상책일 듯싶다. 체면에 위신 따져가며 허세만 쫓다가 결국 그리운 이들과 이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과 맞닥뜨려 허둥지둥 헤매 봐야 속절없을 뿐이리라.


혹여 어떤 이들은 ‘아니 그게 무슨 병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라지만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이 병의 심각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신임을 수많은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다. 치료제만 개발되었다면야 언젠가는 나을 테니 까짓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참아내겠지만 말이다.


먼저 이 병은 걸린 지 채 몇 주만 지나도 벌써 이마에 내 천(川)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하는 증상을 보인다. 게다가 입만 벌리면 말(言) 대신 ‘투덜투덜’만 들락날락거린다.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뭐 좀 쓸 만한 거 없을까 오랜 뒤적거림 끝에 겨우 하나 건져 내고서는 나머지는 몽땅 아끼지 않고 다 헤집어 놓고 말듯이 말이다.


사방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감사(感謝) 거리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가끔씩 불완전한 인생살이에 끼어든 그놈의 ‘불평’ 거리 때문에 말이다. 흔하디 흔한 감사의 조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어렵사리 일부러 찾아낸 불평들만 뻥튀기해가지고는 끙끙 앓기 시작하는 희한한 질병이다. ‘만성 불평증’이라는 불치에 가까운 이 병이 말이다.


모든 병이 그렇듯 초기에 발견해 원인을 뿌리 채 뽑아 버렸어야 하는 데 이미 꽤나 오랜 시간 흐르고 흘러 만성화되긴 했지만, 혹시 내 처지를 긍휼히 여겨 이 몹쓸 만성 불평증을 치료해 주실 분 어디 없으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