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사진 촬영이 있던 날이었지요.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글쎄! 요즘 여대생들은 졸업 앨범 사진이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더구나" "중매쟁이 눈에 잘만 띄면 근사한 신랑감으로 연결돼 평생 팔자를 고칠 수도 있다나 어쨌다나......."
"너희는 대학 앨범 사진도 아닌데 뭘 그리 신경 쓰며 멋들을 부려?"
예뻐 보이려는 욕망이 여성들의 본능일 수 있겠지만, 시쳇말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모르시는 말씀 말랍니다. 그들이 피력하는 현실적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 앨범은 졸업 후 사정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는 거죠. 특히 신경 쓰이는 곳이 오빠들의 배움터, 남자고등학교랍니다. 혹시라도 오빠들의 손에 이 앨범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예쁘게 찍힌 프로필이야말로 선생님이 전혀 상상 못 할 놀라운 파장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가끔 저들의 초등학교 앨범이 교실에 돌아다녔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까만 거짓말이 아닌 '하얀 거짓말'이 가끔은 양념처럼 필요한 때가 이 때다 싶었습니다. 삶의 희망과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내거든요.
"오늘따라 너희 모두가 어쩜 이렇게 예쁘고 공주님들 같니?"
"선생님! 저요?"
"야, 저리 비켜! 선생님 저 말씀하시는 거죠?"
이렇게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어떤 지혜로운 대꾸가 필요할까요? 솔직하게, "얘 너는 아니란다"일까요 아니면 "너도 공주 같고 너 역시 너무 예뻐" 라며 희망(?)을 줘야 할까요?
너무도 뻔한 선택형 문제를 어렵게 풀며 어쨌든 거짓말은 안된다고 가르치면서도 하얀 거짓말을 버젓이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저들도 알고는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래! 나는 선생님이 인정한 미모의 소유자이지만 너는 얼마나 속상하니?' 하며 자기가 아닌 남을 가리키며 착각하고 있는 안타까운 악동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뜻 모를 미소가 입가에 사알짝 드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