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더 아팠어요, 정(情)이

이임식과 퇴임식

by 박점복


긴 여행길 우연찮게 스쳐 지나쳤던 자리, 머물며 누렸던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유난히도 반짝였던 별들, 잊지 못할 풍광으로 머뭇머뭇 무거웠던 발길들, 모두가 소중하게 품고 싶은 그리고 결코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추억으로 곱게곱게 남고 말고다.




소명으로 여겼던 교직생활, 근무지마다 서렸던 흔적과 사연들이, 삶의 여정 중 만났던 즐거움처럼, 아픈 편린처럼 굽이칠 때마다 떠나고 싶지 않단다. 훨씬 더 보내고 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임을 알기는 할까.


40년, 아홉 학교에서의 근무를 마감한 후 떠나던 날, 이임 인사 사진 속 모습이 아련함과 함께 누렇게 빛이 발해 간다. 순간마다 소중한 가치를 선사하지 않은 게 없지만,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의 깊이 파인 옹두리는 더욱 또렷함을 감출 수 없다.


매년 2월 말 학교는 새 학기 시작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낸다. 게다가 사립학교와는 달리 공립학교는 인사이동 시기와 겹쳐 훨씬 어수선 한 때이기도 하다.


학교를 옮기며 아이들과 동료 선후배 교사들과 함께 쌓았던 정을 떼어내야 하는 아픔이 떠오르곤 한다. 같은 시련도 몇 차례 거듭하면 그 강도가 점점 약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라 했던가, 갈수록 타성에 젖어 순수도 사그라들었음 또한 인정하고 말고다.



교사마다, 학교마다, 교육청 단위로 여건과 형편은 다양하지만 나의 이동 주기는 대체로 4년이었다. 물론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근무한 학교까지 있었지만 말이다.


첫 부임지 죽산중학교에서의 4년 근무 후 맞이한 이임식, 송별 인사의 내용은 잊힌 지 한참이지만 그때 흘렸던 눈물과 아련한 추억은 여전하다. 정든 모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것처럼, 사랑보다 슬픈 정을 억지로 떼내야 하는 아픔이었기에 흔적은 깊었다. 정 끊기가 이리도 고통스럽고 힘들 줄은.......


주책없이 흐르던 이임식 눈물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탓도 탓이려니와 학교를 옮기는 교사들이 많게는 20여 명까지 이르는 큰 학교에서의 이임식은 대표가 인사를 가름하는 형태로 바뀌며 간소해졌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눈물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꽉 깨문 입술로 시작한 40년 교직 생활을 마감하던 2020년 2월 퇴임식 이임인사, 주마등처럼 스치는 긴 세월이 어떻게든 참아내려 애썼던 눈물샘의 방아쇠를 그만 당기고 말았다.


떨어지지 않겠다는 정을 억지로 떼내며 첫 부임지에서 흘렸던 눈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교단과의 마지막 이별 자리 퇴임식에서의 그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석 되어 고이 간직해 달라며 애절한 부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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