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단죄하고 싶다면...

by 문성훈


"나는 우이꼬를 저주하고 그녀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몇달 안가서 그 저주가 성취됐던 것이다.그떄 이래로 나는 남을 저주하면 뜻대로 된다는 확신을 갖게되었다. 자나깨나 나는 우이꼬가 죽기를 바랬다. 내 부끄러운 짓에 입회했던 사람이 지상에서 아주 사라져버리기를 원했다.증인만 없어지면 내 수치도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다 증인이었다그.타인이 없다면 수치도 생기지 않게 된다...."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미시마 유키코의 장편소설 <금각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말더듬이에다 추남인 주인공 미조구치는 아름다운 우이코를 연모한다. 그러던 어느 새벽녘. 이슬이 내린 느티나무아래에서 출근하던 우이꼬를 기다리다 놀래킨 후 숙부에게서 호되게 야단을 맞게되면서 품게 되는 생각이다.


지금의 일본 그리고 일본인의 심리가 읽히는 대목이다.

영문도 모른 채 어둠속에서 나타난 미조구치로 인해 공포를 느끼게되는 우이코의 아름다움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역사가 아닐까. 그렇게 우이코는 한국을 연상시킨다. 흠모의 대상이었지만 끝내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오랜 침략을 통해서도 끝내 정복하지 못한 한국을 대하는 일본의 비뚤어진 심성은 가해자로서의 그들의 행위를 반성하기보다 그 대상이 사라져 주기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증인은 위안부 할머니들일 수도 있고, 그들의 만행을 알고 있는 세계인 중 누구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음험하고 괴괴한 속성은 변태스럽고 관음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독도를 끊임없이 훔쳐 보고, 가해자이면서 원폭의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려는 몸부림처럼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진심어린 사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죄의식은 그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아야지 나타난다. 그들에게 드러난 '수치'야 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문희상의장이 위안부 피해자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왕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섣부르다. 어디선가 "정치인은 열가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외국어에 능통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해석이 가능한 말을 하고, 제스처,비유,은유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예로 고 김종필을 들었었다.

일본인에게 일왕은 소설 속 '금각사'와 같은 존재다. 그들의 관념 속에는 절대적인 미의 상징이자 불멸의 존재와 다름없다. 진주만을 습격당한 미국이 승전을 위해 악귀처럼 달려들며 자살폭탄을 자임하는 일본군과 일본인을 전쟁중에도 연구했음을 상기하자. 그 결과물이 '국화와 칼'이라는 명저로 남았다. 그래서 그들은 천황의 입으로 '항복선언'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전범인 천황제를 없애거나 단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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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일본을 이기고 싶다면 그들 스스로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해야한다. 세계에 그들의 비인륜적인 죄상과 반성을 모르는 비양심을 고발하는데 더 주력해야겠다. 그래서 수치심에 그들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사'를 불태우듯이 말이다.

문희상은 6선의원이자 의전서열 2위의 국회의장이다. 탄산음료가 당장은 시원하고 갈증을 없애줄지는 모르지만 몸에 좋을리 만무하고 근본적인 갈증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사이다'발언은 후배에게 양보하는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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