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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디

Mundi

by 문성훈

어린 시절을 일본식 관사집에서 살았다. 복도식 아파트처럼 좌우 양측 벽면을 옆집과 공유하는 식인데 다른 점이라면 대문 앞도 골목이고 뒷편부엌으로 난 쪽문에도 골목이 있는 구조였다.
부엌 뒷문으로는 주로 동네 아줌마들이 드나드셨다. 상을 차리다 모자란 밥 한공기가 오가기도 했고, 명절 부침개나 나눠 먹던 반찬이 들락거렸다.
엄마는 찬거리를 다듬을 때 뒷골목에 펼쳐놓으셨고 으레 오가던 아줌마들이 그대로 주저앉아 일손을 거드셨다. 장을 봐오실 때도 뒷골목으로 난 그 문을 이용하셨다. 한마디로 부엌으로 난 쪽문은 손님이 아닌 이웃이나 식구만이 이용하던 문이었다.

예외인 경우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 문으로 찾아오던 모녀가 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됐을까. 아주머니 얼굴과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나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썼거나 두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 목소리가 작아서 못들었을 수도 있다.
쭈그리고 앉아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그 아이는 내내 서있었다. 그때마다 거래가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그 물건을 아이 손에 쥐어줬고 아이가 엄마에게 건넸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엄마와 아주머니가 직접 물건과 돈을 주고 받았다. 스쳐지나듯 그 아주머니 손을 본듯도 하다. 한여름에도 손등까지 내려오는 긴 셔츠차림이셨다.

오갔던 물건은 연고였다. 납작한 플라스틱 분홍색 연고통도 있었고 흰 튜브도 있었다.
우리 식구에게 그 연고들은 만병통치약이었다. 부스럼에도, 무릎이 까졌을 때도 심지어 아버지는 무좀 난 발에도 바르셨다. 그야말로 특효라 할 만했다.
어머니는 우리 식구가 바르고도 남을 많은 양을 사서 친척과 이웃에 나눴다. 안방 경대 서랍에서 그 연고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엄마는 달리 말씀이 없으셨지만, 얼마지나지않아 나는 그 아주머니가 문둥병환자란 걸 알았다.
그리고, 소록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에게 지급된 연고를 팔러 나환자촌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혹시나해서 걱정하는 내게 엄마는
"괜찮다. 전염 안된다. 아(아이)는 정상인데...우얄꼬.."
엄마는 되려 그 아이를 걱정하셨다. 아마 세상의 눈길이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염려하신게 아닌가싶다.

오랜만에 고향친구를 만나면 "야 이 문디 자슥아..."가 튀어나온다. 부모는 말썽 부린 자식에게 "이 문디 손이 우짠다꼬..."라고 한다. 이렇게 문디(문둥이)는 경상도에서는 욕이 아니다. 친근한 이에게 쓰는 방언이다.
한센병(Hansen)은 이 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발견한 의사 이름에서 유래된 문둥병(나병)의 또 다른 이름이다. 1871년 명명되기 전부터 구약성서에도 나올만큼 오래된 질병이다.
그런데, 인류의 95%는 자연면역력을 지니고 있고, 설사 발병했더라도 약 한알만 복용하면 전염성은 99.99% 사라진다. '천형'으로 불릴만큼 흉칙한 중상이 나타나는 것에 비하면 의외라고 할 만큼 순한 질병이다. 물론 유전되는 질환도 아니다.
전근대적인 악습으로 많은 나환자들이 오랫동안 차별당하고 고통받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 2019년 한국에서 이 한센병이 화제가 됐다. 상대를 친근하게 부르려던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5년 후면 국내에서 한센병 환자가 사라져 더는 신규 환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한센병 경험자나 마무리 치료 단계 환자도 20년 후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124명의 활동성 환자를 포함해 1만명정도의 유경험자가 있다.

그들에게 이런 화제거리는 인격적 모욕이고 또다른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준다.
한센병환자들이 감각이 무뎌져 심하게 앓더라도 정작 본인은 고통을 못느낀다는 의미로 쓴 것이라 했는데 육체적 통증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아프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험으로 안다.
성한 자식을 앞세우고 우리집을 방문해야했던 그 아줌마처럼 말이다.

박사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는 발길에 차이는 게 석사고 박사라는 말을 듣는다. 학사모만 쓰고 있어도 대접받던 반세기 전에 비하면 그만큼 흔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준이 천차만별인데다 전문분야에 관해 받는 학위이니만큼 다른 영역에서는 일반인에 비해 전혀 나을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잘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걱정스럽기는 하다. 도시는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게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 도시를 계획하는 전문가를 자칭하면서 정작 인류애는 부족하고, 인간을 이해하거나 상호 소통하는데 결함을 보이니 말이다.
그것도 박사출신 국회의원이라면서 고졸에다 동네 아낙인 우리 엄마만도 못한 식견과 인정(人情)을 갖추지 못한것만 같다.

라틴어에서 '문디(Mundi)'는 '세상', '세계' 를 뜻한다.
정신이든 육체든 어딘가 결함을 가진 우리들. 그 문디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게 세상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누구를 모욕하거나 지적하는데 조심해야 한다. 그 자신도 문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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