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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by 문성훈

버스를 이용하다보면 드물게 기사분이 여성인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승객이 기사분에게 행패를 부리는 뉴스 영상이 떠오른다.

'혹시라도 취객이 시비를 걸면...'
'여성이라고 괜히 더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하는 승객은 없을까?'

오늘 탄 버스의 기사분도 여성이다. 헤어스타일이며 잘 다림질한 셔츠, 선글라스까지 비행기 파일럿을 연상하게 된다.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물씬하다.
정작 나를 감동시킨 건 승차하면서 눈 앞에 선물처럼 다가 온 한다발의 꽃이다.
필시 기사분의 아이디어인성 싶은데 그 향은 맡을 수 없지만 그 마음의 잔향이 깊고 그윽하다.

2016년 UN은 여권 신장 명예대사에 '원더우먼'을 임명했다. 날이 갈 수록 강대국 특히 미국의 이권을 대변하고 스스로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UN이 마침내 희화해되길 마다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캐릭터 자체가 섹시함을 강조하는데다 남성을 압도하는 힘의 상징인 원더우먼이 여성 권리 신장이나 양성평등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악이든 선이든 무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과정에는 희생이 따른다.
어벤져스가 세상을 구한다고 날아다니는 동안 많은 무고한 시민이 무너지는 빌딩에 깔리고, 운전하다 느닷없이 날아든 트럭에 전 가족이 몰살한다.
이런 전근대적이고 반지성적인 폭력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력(武力)을 무력(無力)하게 하는 힘.

여성만이 가진 위대하고도 진정한 힘이 절실한 시점이다.

불쾌한 기분으로 버스에 올라 탔 건, 취기 오른 승객이든그들에게 안기는 한 다발의 꽃 무더기보다 더 강력한 진정제는 없을 것이다.
어제같은 오늘을 시작하며 찌뿌둥한 기분이었더라도, 하루 일과로 고단하고 맥빠진 퇴근길이더라도 그 분의 버스에 올라탄다면 잠시나마 위안 받고 피로를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시대 진정한 '원더우먼' 200번 버스 여성 기사분. 당신을 칭찬하고 응원합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성 택시,버스 운전사는 1000명에 이르고, 시내버스와 마을 버스 여성 운전기사는 400명을 웃돌지만 전체 인원의 1~2%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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