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대형 냉장고만한 스피커를 본 적이 있다. 오디오를 잘 모르는 나는 스피커인 줄도 몰랐다. 그냥 놀래기만 했다. 과시를 위한 장신구라고 내맘대로 생각했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친척 형님의 사무실에서 그만큼은 안되지만 소형 냉장고만한 구형 스피커를 봤다. 아무리 사장이라지만 방음시설도 안된 그 방에서 볼륨을 키울 일은 없어보였다. 사담을 나누는 내내 클래식 음악이 깔렸다. 물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볼륨이었다. 오디오 특히 스피커에 대해 물었다. 진공관 앰프에 이어 스피커로 화제가 옮겨갔다. 에이징이 어떻고하는 전문적인 얘기는 뒤로 물리더라도 내 수준에 맞춰서 해준 말이 꽂혔다.
" 볼륨을 높여도 힘겨워하거나 소리가 찢어지는 않는 큰 스피커가 오히려 볼륨을 작게 해도 더 좋은 소리를 낸다"
ㆍ 지금까지 자동차를 다섯번 정도 바꿨다. 그때마다 자동차를 길들이느라 출력을 높이는 과정을 밟았고 최대 속도에 이르기를 반복했다. 그 방법은 무척 주효했다. 비교적 정속운전을 하는 편인 내가 느끼기에도 엔진은 힘들어하지도, 소리를 높이고 신음을 토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자가 몰던 차는 주행거리가 짧아도 중고가격이 높게 책정되지 않는 것이 정설인 이유기도 하다.
최대출력과 스피드가 높은 자동차는 낮은 출력과 저속에서도 운전자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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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높은 경지에 이른 구도자의 목소리는 편안하고, 그 말씀은 아이도 알아들을 만큼 쉽지만 심금을 울리고 공명은 오래간다. 당신이 목소리를 높이고 현란하고 해박한 어휘로 군중을 선동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성경 어느 페이지를 열어 제껴도 실천은 못하되 해석하지 못할 말씀은 없다.
엄마가 각막에 이상이 생겼을 때 최고의 명의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대학 병원 병원장을 역임한 연세 많으신 의사셨는데 전문용어와 치료과정을 시골무지렁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안심시켜줬다.
"각막은 영화관 스크린과 같아서 거기에 영상이 비춰야... 그런데 그 막이 헤져서.... 벽지 붙이듯 레이저로..."식이다. 수술과정까지 소상히 그리고 찬찬히 알려줬다. 감탄했다. 놀랄만큼 비싼 진료비가 아깝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결코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문자로 독자를 기죽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달하려는 바가 왜곡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담백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해일같은 감동을 일으키고, 가뭄에 소낙비같은 깨달음을 내린다. 대가(大家)란 어떤 사람을 일컫는 지 단박에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