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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n 06. 2019

괜한 얘기

이동진의 평론을 두고...

지적 탐구심(知的探究心)과 지적 허영심(知的虛榮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둘 다 공부가 필요하다는(혹은 했거나, 하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양상은 천양지차다.

누군가 "당신의 장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자리건, 상대가 직원이건, 학생이건 가리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래야 가장 효율적으로 하나를 더 알거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하다보면 댓글의 의미나 용어를 모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죄송하지만...설명을 부탁드려도..."라고 댓글을 붙인다.
물론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도 검색하면 곧바로 사전적 의미를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 물으면 상대의 경험, 그리고 주관적인 생각까지 더해지니 (어떤 경우는 찾기 힘든 자료까지 첨부해서...)  나로서는 감읍해야 할 선생이 생기는 셈이다.

간혹 직원이나 학생이 묻는 것에 대해 제대로, 확실히 아는 것이 아니면 "글세....나도 잘 모르겠는데 공부해서 내게도 알려 줘 "라고 말한다. 대개의 경우 신이 나서 그 답을 찾아 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말하고 난 후의 행동이다. 나로선 어렴풋이나마 알고있으니 검색을 해도, 관련 자료나 책을 찾아도 좀더 빠르게 깊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린다. 이윽고  설명을 듣고 나면 "나도 좀 찾아봤는데..."라면서 부연해서 알려준다. 그들의 답에도 미처 내가 모르던 내용이 있을 때가 있다. 그야말로 서로 윈-윈(Win-Win)하는 셈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들어 지적탐구라고 부른다.



석사과정 중에 경영학 프로그램 강좌를 찾아서 들었다. 이과 출신이 문과 수업을 듣자니 곤욕스럽기 그지없었다. 생경한 용어와 영어가 날파리처럼 눈 앞에서 웅웅거리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체득한 경영이란 것의 오류와 이론적 근거를 알고 싶어서다. 두번째는 같은 학비에 뭐 하나라도 더 얻어가자는 욕심이었다.
그런데 예기치않게 세번째 수확이 있었다.
그것은 교수들이 쉬운 이론인데도 너무 어렵고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하고, 지식이 방대한 만큼 긴 시간동안 장황하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교육이 교습자가 아닌 학습자 위주여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대부분의 경영 이론은 의무교육을 마쳤고 좋은 선생을 만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한동안 블록 체인,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다. 시대에 뒤쳐질까봐 말귀은 알아들어야지 싶어 서적이며 인터넷, SNS를 파고 들었다. 당연히 녹록하지 않았다. 같은 책을 읽고 후배와 마주 앉았다. 후배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재원이다. "내가 알아듣게 쉽게 말해봐"
너무 쉽게 설명하고 요약해주니 두터운 책 한권을 읽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던 의문이 다 해소됐다.
지금도 간간히 블로그나 SNS에서 그 주제에 관한 글을 읽게 되는데 상당수가 자신의 전문 지식과 투자 예측을 과시하거나 과신하는 둣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의를 위해 공간심리학를 공부하다보니 뇌과학에까지 호기심이 미쳤다.
전문 서적 몇 권과 동영상으로 복잡한 뇌 구조와 기전(機轉)을 이해하자니 시쳇말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단비같은 동영상을 찾았다. 그 분은 뇌의 기전을 전기 회로에 비유했는데 이해도 잘 될 뿐더러 강의에 절로 빠져들었다.

나를 곤혹스럽게 한 교수와 저자 그리고 전문가들은 자신도 모르지만 지적허영심을 가졌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

나는 직업상 양 극단의 사람을 만난다.

대개의 경우 작업을 의뢰하는 측은 경제력이나 교육 수준이 최상위에 속한 사람이고, 나의 지시로 현장 작업을 하는 분들은 그 두 가지면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못미친다.

간혹 지적 수준은 높되 인격이 덜 된 의뢰인을 만날 때가 있다.
굳이 적절한 우리 말이 있는데 대화의 절반은 영어고, 드는 예는 외국 사례다. 면전에 현장 소장이나 작업자가 있는데도 굳이 대표인 나를 찾는다. 그런 경우 최종 결정권자가 나여서 찾는 것이 아니다. 격이 안맞다고 여겨서다. 그런 얘기를 직접 들은 적도 있다.
우습게도 예는 외국을 들면서 밤샘 작업과 공휴일 작업을 독려하고, 지적재산권은 인정안하면서 어이없는 예산으로 흥정을 시도하는 부류다.

만약 내가 그들로서는 외래어로 들릴 현장용어(주로 일본어에서 유래된)와 전문용어, 희귀 브랜드명으로 아는 척을 한다면 나는 그들의 지적허영심을 이용해서 (대부분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일테고,
현장 작업자분들께 굳이 잘 안쓰는 우리말화한 전문용어와 혀를 굴리는 영어를 쓴다면 나는 지적 허영으로 그분들의 지적탐구를 강요하는 게 된다. 그로인해 나는 경제적(작업능률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시간이 소모되므로) 손해를 보게 된다.

ㆍㆍㆍㆍㆍㆍㆍ

소비생활에서의 허영심처럼 지적허영심 또한 개인의 성취욕과 성장을 자극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양질의 지적허영심이 되려면 지적탐구심이 따라줘야 한다.
마치 명품을 갖고 싶은 소비 성향을 가졌다면 정당한 부(富)가 추구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이동진씨의 평론을 평할 수준도 못될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의 과거 언행을 미뤄 짐작건대 '지적허영'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되물을 수는 있다.
나 역시 '명징(明澄)'이란 단어를 좋아하는데(뭣보다 쨍하고 새뜻한 울림이 있다)  이 단어를 난해하다거나 허세(혹은 지적허영)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자신은 지적탐구심이라도 갖춘 사람들인지 말이다.

가방만 명품이 있는게 아니다.
글에도 명품이 있다. 명품을 소유하고 싶으면 디테일과 소재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심미안(審美眼)부터 가져야한다. 그것이 가방이건 글이건...

※ 뜻하지 않게 몇 글자 문자 쓰는 바람에 욕먹는건 아닌지 걱정되지만, 내 글은 코스트코 장바구니 수준임을 잘 알고 있어 안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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