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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n 11. 2019

모난 돌이 쓸모있다

감동근과 신영준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길을 걷다 물벼락 맞듯 오물을 뒤집어 쓴 적도 있고, 실수는 셀 수 없을 지경이며, 죽는 날까지 밝히지 못할 허물도 안고 살아간다..

#Episode1
형제만큼 가까운 고향 선배가 있다.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 즈음이 선거철이었다. 선거로 화제가 옮겨붙었다. 뽑을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이르자

"형 그냥 형이 출마해라. 내가 뛰어줄게"
선배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명망도 높은데다 누구나 존경할만한 인품과 식견을 갖췄다.

"뭐? 말도 안되는 소리..."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난 터라 둘 다 불콰해졌다.
"출마하라니까. 내가 열심히 뛸게.그리고 당선되면 다 때려치고 보좌관 해줄게"

"그래서 더더욱 안돼"

"왜? 출마해보라니까"

"일단 사전검증에서 통과가 안돼. 별 별 흠집을 다잡을 텐데... 그냥 고고하게 살란다"

"국회의원은 청문회 안하잖아. 형 흠집이란 건 내가 다 아니까 입다물게"

"잘도 입 다물겠다. 게다가 보좌관 한다며... 약점 쥐고...아이고... 그 유세를 어떻게 감당해?"

"응.... 그건 그렇네. 눈치는 빨라가지고....ㅋㅋㅋ"

"너 땜에 난 관직에 못나가... 아니 안나가....ㅎㅎㅎ"

푸하하핫 ㅋㅋㅋ

#Episode2
사업 초기에 친지의 소개로 그 분께는 대학선배되시는 분의 일을 하게 됐다. 큰 가구회사인데 본사 전시장을 인테리어하는 일이었다.
모 공단에 있는 본사를 방문해서 첫 미팅을 가졌다. 회사 대표가 근무복 차림으로 맞았다. 직업적인 촉으로 회장실의 소품, 가구, 사무실 전경에서 근검(勤儉)하고 깔끔한 성품임을 알아챘다.
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하게 됐다. 아니나다를까 집기며 시설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데 윤이 날만큼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이후 과정은 무난했고,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작업 진행하며 친해진 임원 한분이 " 아마 나중에 회장님이 별도로 말씀하실텐데 너무 마음 상해하진 마시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해준 것 말고는...

완공을 했다. 검수도 했고 이제 잔금을 받는 수순만 남았다. 회장이 찾는다고 했다. 당시 그 회사는 KOEX에서 가구전시를 하고 있었다.
전시장으로 갔다. 마주한 자리에서 그는 서류 뭉치를 꺼냈다. 작업 시작 전에 제출했던 견적서다.  첫 장부터 한장 한장 넘겨가며 체크한 항목을 짚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 할로겐 램프가 12,000원인데 알아보니 10,700원이면 구입하더라"  " 어디에는 뭐가 빠졌더라" 는 식이다. 당연히 추가적으로 더하거나 사양을 높인 경우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다 덮을 때까지 기다렸다.

" 말씀 다 하셨습니까?" 내가 너무 반응이 없다싶었는지

" 그러니까 내 말은 잔금에서..." 말을 끊었다.

" 계약서 가지고 계시지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바인더에서 꺼내줬다.
그리고...
그대로 찢어 버렸다. 견적서와 함께...

" 아...아니 그게..." 내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해했다.

" 회장님 저 비록 전세살지만 남은 잔금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남은 공사비는 없는 것으로 하지요. 증빙 서류도 없어졌으니까요" 일어섰다. 그리고 미련없이 전시장을 나섰다.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인내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렇게 전시장 게이트 밖으로 빠져 나왔을 즈음 헐레벌떡 뒤쫒아 온 회장이 내 팔목을 잡았다.
"아니 이 사람...젊은 사람 성격이...사업하는 사람이 이렇게 불같아서야... 그러니까... 내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을 이어갔고, 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앞서 단호했던 행동과는 달리 ' 어떻게 업체 결제를 해야하나?' '전세금을 뺄까? 어디로 이사가지?' 암담하던 기억만 선명하다.
다음 날 오전.
어제 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경리과장이다.
" ㅇㅇㅇ 잔금 전액 입금됐는데요"

ㆍㆍㆍㆍㆍㆍㆍㆍㆍ

걸리적대던 손 거스러미를 뜯었다가 심한 생손앓이를 하기도 하고, 친구간에 사소한 의견 차이로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에도 목숨을 잃는 나약한 인간이고 보면 다들 그럴 것이라 자위하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흠집이나 약점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자만하거나 착각 할 뿐이다. 곯은 상처에 약을 바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째서 고름을 긁어내는 사람이 있다. 고통은 더하겠지만 상처는 더 빨리 낫는다.

나 역시 허물도 모자라는 구석도 많은 사람이다. 침착해야 할 때 흥분하기도 하고 정작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외면하기도 했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게 사람마다 하나씩은 이가 빠진 채 맞물려 돌아가는 게 사회라고 생각한다.

반듯한 돌을 아래 쪽에 괴어선 안된다. 우둘두둘한 돌로 쌓아야 바람에 맞설만큼 서로를 움켜 잡을 수 있다. 귀 나간 곳을 튀어 나온 돌이 메우고 솟은 데가 파인 곳을 받쳐야 단단하고 튼튼하다.

가히 우리 사회의 주춧돌감인 두 사람의 격한 논쟁을 지켜봤다. 그저 지켜 봤을 뿐이고  주제넘게 판가름할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깝다.
'이렇게 부딪치다보면 해변가 몽돌처럼 장식으로나 쓸 수 밖에 없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사람은 곯은 상처를 째는 방법을 택했다.  붓기를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할거다.
상대방의 분을 삭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손 거스러미 함부로 뜯지 말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내 비평은 작가를 칭찬하기 위한 정교한 기술이다" - 故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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