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돌아보건대 시험은 언제나 나를 옥죄였고 긴장시켰다. 오죽했으면 철없는 농담으로 "시험을 만든 인간을 그냥 죽..."이라며 험악한 말을 함부로 뱉었을까.
왜 그랬을까?
첫번째는 아무도 내 생각을 묻지 않아서였다. 궁금해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가르쳐 준대로를 기억해 내고, 책의 내용을 얼마나 잘 옮겨적느냐가 관건이었다.
두번째는 학문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어서다. 과연 이 학문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이렇게 쌓은 기량은 과연 나중 밥벌이에 얼마나 유용할지 몰라서다. 심층으로 파고들고 기회도 없었거니와 다양한 학문과 지식을 쌓을 기회가 차단됐었다.
세번째는 공부를 위한 시험이 아니고 평가를 위한 시험에 대해 넌더리가 나서였다. 수학도 아닌데 정답을 맞춰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볼 기회가 없었으며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만 집중해야 했다.
기말고사 출제를 마쳤다. 정확히는 '문제 유출(?)'을 공지했다는 뜻이다. 이번 학기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두 출제될 문제를 사전에 공지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시험 문구 그 자체를 옮기지는 않는다. '공간심리학의 이해'에 대해 묻겠다고 하면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갖게되는 인간의 심리적 변화'에 대한 사례나 경험, 자신의 생각을 써내야하는 식이다.건축학과생이고 '실내건축학'과목인데 철학,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질문도 심심찮게 던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분야가 다른 책 4권을 읽게 했다. 지정한 2번의 전시회 관람과 감평이 필수였고, 타대학 다른 분야 교수님을 초빙한 2번의 특강이 있었다. 맥이 풀릴만큼 달렸다.
강의 첫 해에는 내가 선정한 36권의 책 중 4권을 선택해서 작성한 서평과, 2차례의 현장방문 리포트로 평가를 했고, 그 다음 해에는 한 학기동안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과 결과를 심사하는 방식을 취했고 , 오픈 북(노트북, 스마트 폰 모든 매체를 활용한) 시험과 평가를 치르기도 했었다.
올해에는 시험 문제를 사전에 알려주고 치른다. 수강생이 늘어 서평과 리포트를 평가하기고 힘들 뿐더러 아무래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과제 수행 과정을 심사하기에는 강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가장 집중력을 갖는 공부가 되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마음껏 펼치며 그것이 어느 분야에서건 관심을 갖게되고 파고들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타인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내가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위치가 됐을 때, 가르침을 받고 배우다가 가르치고 깨달음을 줘야하는 어려운 자리에 서게 됐을 때 과거의 내 모습을 , 내가 가졌던 감정과 생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