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2

by 문성훈

첫 대면은 부산에서였다. 나는 당시 해운대에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본뜬 거리를 조성하는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그는 규모있는 주문가구회사 사장이었고, 내가 실장으로 있던 회사와 거래를 했었다. 큰 키에 이태리 미남배우처럼 하얀 얼굴이 이쪽 일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않았다.

현장 미팅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작업자들과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였다. 나도 그렇지만 그 역시 직접 작업을 할 일은 없었으니 몇 잔의 반주를 곁들였는데 그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전부터 실장님 얘기는 들었지만 일하시는 거 보면 빈틈없고 깐깐하더군요"

"성격 안좋다는 말로 들립니다 "

"꼭 그런 건 아니고, 제가 그래도 거래처가 많은 축인데 드물어서..."

"그렇습니까. 그래도 제가 실수한거는 없지요?"

"그럼요 분명하고 철저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장님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올해 나이가 어찌 되십니까? 무슨 띠신지?"

일을 하다보면 한 두살 정도는 올리기 일쑤라 서로 주민증까지 확인하고... (아마 둘 다 이때부터 취기가 돌았던 것도 같다) 내가 그보다 2살이 많았다. 내심 자신보다 어릴 거라 짐작했단다.

"지금까지 일로써 만난 분들하고는 사적인 관계를 안맺었습니다. 당연히 형, 동생 해본 적도 없는데, 형님하십시요. 제가 동생하겠습니다. 그러고 싶네요"

그날 점심부터 반주로 마신 술이 밤늦도록 이어졌고, 마침내는 제수씨(운전사와 경리일을 봐주며 같이 일을 하니 항상 동반을 했었다)는 차안에서 기다리고, 우리 둘은 노래방에서 밤새 어깨동무를 하고 고성방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족히 소주 스무병은 마셨지 싶다.
그는 체력으로, 졸지에 형이 된 나는 깡으로 마셨다. 정말 드물게 연극영화과 출신의 잘생긴 동생을 두게 됐다.

ㆍㆍㆍ

그렇게 우리는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많은 에피소드를 남기며 가깝게 지냈다.
하루 중 어느 때 만나도 그날은 나나 그나 일과는 끝난 셈이고 마지막은 늘 술이었다.
최근 3년 정도 서로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연말연시에는 안부 묻는 전화가 오곤 했는데 그마저도 끊겼다. 이런저런 일로 경황이 없다보니 나 역시 잊고 살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011로 시작하는 번호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마지막까지 그 번호를 고수할 사람 중에 한 명이어서 주저없이 눌렀다. 연결 음악도 변함없다. 받지를 않는다. 혹시나하는 걱정으로 제수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네. 그럭저럭... 별고 없으시죠? 근데 00이가 전화를 안받네요. 어디서 미팅 중인가?"

"아뇨.... 그게.... 00씨 지금 시골 가 있어요"

"현장이 시골인가보죠?"

"아니...그게..." 말꼬리가 흐릿하다.

통화 중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양해를 구하고 돌려 받았다.

"어 형. 저 00이에요. 전화했었죠?"

"그래 임마. 너 죽었냐? 왜 그리 소식이 없어... 요즘 경기 좋은가 보지?"

"그게 아니고... 형...."

1년 전 간에 이상이 발견되어 급히 고향으로 혼자 내려가서 요양 중이라고 했다. 회사는 아내와 동생이 맡아 하고, 큰 프로젝트나 사업결정에만 관여한다고 했다. 아직 1달에 한번은 서울로 올라와 검사를 받는다고도 했다.

"그래. 내 그럴 줄 알았다. 좀 작작 마시지" 나까지 침울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러는 형은 안마셨수..."

"나도 4~5년전부터는 술 안먹는다. 반주도 아주 가끔 한다. 별로 안땡겨서..."

"잘했어요. 형. 언제 한번 내려와요. 아니 제가 올라가면 뵐게요"

"병원나들이 하는 거라며... 그러지말고 조만간 내가 내려가마"

"그럼 더 고맙고 반갑죠. 여기 볼 것도, 먹을 것도 많고..."

"그러면 뭐하냐 너하고 한 잔 하지도 못하는데...."

"요즘은 많이 좋아져서 가끔 가볍게 한 잔씩은 해요 형"

"시끄러 임마! 술병 난 놈하고 술은 안먹어"

"ㅎㅎㅎ 아무튼..."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반가운데 서글퍼졌다.
한창 때 죽지않을 만큼 먹었던 게 술이었다. 실수도 했고, 낭패도 봤다. 그나마 사고가 없었던 게 천운이고 조상덕이지 싶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술을 마셨던 게 아니라 사람을 마시고 다녔던거다.
4~5년 전부터 술자리가 뜸해진 건 같이 마시고픈 사람들이 줄어들어서지 주량이 줄어서가 아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내가 마주하고 술잔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은 한 두가지 질병을 안게 되어서거나 노쇠해져서 예전만큼 자주 만남을 가지지 못한다.
요 근래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만나던 세 사람이 간 질환을 앓게되서 술을 못마시게 됐다.

ㆍㆍㆍ

여든이 넘은 이모부님은 어려서부터 온갖 병치레를 한 약골이어서 약대를 가게 됐다고 하셨다. 젊어서는 테니스와 운동으로 단련하셨고, 약국을 그만 둔 지금도 매일 아침 일어나시자마자 맨손체조와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신다.
대학생이던 나는 방학마다 그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때 이모부님께 들었던 말을 기억한다.

"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에네르기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초년에 너무 많이 쓰게되면 노년이 힘드니 적절하게 잘 유지해서 마지막까지 쓸 수 있게 하는 게 현명하다"

내 식으로 술에 적용하자면
" 누구나 사람은 일생동안 마실 수 있는 주량이 비슷한데 젊어서 너무 달리면 나중에 병치레를 하기 마련이라서 적절하게 조절하며 마셔야 한다"쯤 되겠다.

머지 않은 미래에 사위 술 잔도 받아야 하고, 며느리를 맞아 사돈 양반과도 한 잔 해야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페이스조절에 들어가야겠다.

정말 반가운 얼굴, 마주하고 싶은 사람과 약주(藥酒)만 조금씩 즐길 요량이다.
젊은 날 남보다 더 많은 양을 마셨으므로,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벌써 하나 둘 술자리를 비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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