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알고 싶다'는 바램과 '그런데 어쩌라고.."하는 퉁명스러움이 그것이다. 전자는 성장을 촉진시키고, 후자는 멈추게 한다.
나는 예술을 모른다. 거의 매일 영화 1편씩은 보고 있고, 전시회이나 박물관을 찾아다니는데 소홀한 편도 아니며, 졸게 되더라도 연주회나 공연을 챙기는 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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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평론가가 약 8,000~10,000편의 영화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2시간씩 잡아도 약 20,000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는 전문가다. 그와 일반인이 동시에 같은 영화를 봤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더 집중해서 보게 될까? 의외로 일반인이다 그런데 누가 더 그 영화에 관해서 깊이 파악하고 애기할 수 있을까? 예상처럼 전문가다. 이는 뇌과학으로 입증된 결과다.
요즘 각광받는 직업 중에 쉐프를 예로 들어보자. 동일한 레시피로 요리를 만든다고 할 때 누가 더 짧은 시간에 완성도 높은 요리를 만들어 낼까? 당연히 쉐프다.(예상했겠지만...) 그런데 이는 숙달된 빠른 손놀림 때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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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는 오랜 시간 많은 편 수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라는 장르에 특화되고 구조화된 뇌가 발달되어있다. 즉 전문가는 특정분야에서만큼은 일반인보다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이 더 활성화되고 시냅스에서 자극에 더 강하고 넓게 연결된다는 뜻이다. 영화 한편에는 수 많은 대사와 음악 거기에 다양한 장면과 배우의 연기까지 일반인으로서는 상영시간동안 한번에 담을 수 없는 넘치는 정보가 실려있다. 그런데 전문가인 영화평론가는 이를 구조화해서 처음 시작과 전개, 마무리, 주요한 장면들을 사진 찍듯 뇌에 저장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쉐프는 빠른 손놀림 이전에 머릿속에 완성된 요리와 자신의 요리를 맛 볼 사람의 반응까지 염두에 두지만 이 모든 것이 뇌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지시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팬에 기름을 둘렀는지, 파와 양념을 썰어뒀는지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요리하는 과정 속에 자신도 모르는 새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마무리까지 치닫는다. 이는 습관과 반복의 승리기도 하고 뇌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보여 준다. 연구에 의하면 쉐프가 요리를 할 때 뇌의 상태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즐겁고 편안한 상태인 것이다. 일반인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작업에 집중하지만 그만큼 뇌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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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직업상 그리고 빨리 시작하지 못해서 순수 예술에 1만시간을 투자하지도, 그 분야의 전문가 수준에 이르지 못할 지도 모른다 . 감히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갈증은 남는다.
나만의 방식을 찾을 뿐이다, 다분히 내 분야에서 익힌 것이다.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막히는 지점에 이르면 무척 오랜 시간을 골몰한다(꿈에 나타날만큼...) 가령 평면 구성이 여의치 않으면 종이를 뚫을듯이 하루종일 보고만 있다. 그렇다고 많은 구상이 머릿속을 오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 생각없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아주 우연찮게 아이디어가 터진다. 이는 물론 지나 온 세월만큼 축척된 선험적 학습데이터가 있어 가능한 것이다.
나는 대체로 오랜 시간을 전시장에 머문다. 5~6시간은 보통이다. 어떤 때는 아무 사전정보나 지식없이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고 다시 되돌아가 작품 설명이나 작가의 말을 남김없이 필사한다. 그리고 한 작품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관람기회를 가지려는 것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고 오래 머무는 것은 아무 생각없이 지켜보기 위해서다. 영화나 공연도 그와 비슷하다. 그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내 뇌를 구조화시키는 습관이라고 여겨서다.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