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다. 정확히는 복숭아 털 알레르기인데 닿은 부위가 빨갛게 변하고 두드러기가 온몸으로 번진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복숭아를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다. 싫어서 안먹는게 아니라 못먹는다는게 싫어서 꾸준하게 온몸을 긁어대며 꾸역꾸역 먹어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통조림에 든 황도부터 시작해서 잘게 썰어놓은 조각을 입술에 닿지않게 먹었고, 차츰 양을 늘렸고 이제는 마음껏 베어 먹는다. ㆍ 성인이 된 이후 발견한 번데기 알레르기는 난데없고 당황스러웠다. 어릴때부터 무척 좋아해서 먹어왔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번데기와 고동을 파는 리어카앞을 지나치지 못했던 나였다. 입사 후 회식 뒷풀이에서 번데기안주를 스스럼없이 집어먹었는데 발진이 일어나고 얼굴부터 붓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좋아하던 번데기를 먹을 수 없다니... 역시 지금은 최애하는 술 안주중에 번데기가 들어간다. 방법은 복숭아 알레르기와 비슷하다. 직장생활을 하니 만약을 대비해 주머니에 약을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양을 늘렸다. 증세를 아는 직장동료들이 번데기를 유독 찾는 내 행동을 신기해했지만 못먹는게 싫었다. 그것도 좋아하는 그리고 좋아했던 번데기를 '못'먹는 게 싫어서다. ㆍ 유일하게 극복이 안되는 알레르기가 있다. '사람 알레르기'다. 이 알레르기 반응은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말이 없어지거나 톤이 바뀌는 것인다. 그 역시 내 딴에는 극복하느라 오랫동안 시도를 했었는데 차도가 없다. 사업하는 남편을 둔 탓에 항상 당부를 하던 아내도 얼마전 포기를 선언했다. "당신은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것 같아. 얼굴 표정과 목소리에서 다 티가 나" 그래서 생긴대로 살기로 했다. 안타깝지만 아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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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인자는 다양하다.
첫번째는 내가 속물이어선지 '고결함'이다. 정확히는 배어있거나 은은하게 퍼지는 게 아닌 스스로 주장하고 내세우는 '고결함'이다. 구린내가 올라오는데 든 사람, 가진 사람에게서 난다. 그들에게 아쉬운게 있는 사람들은 모른 척하고,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아준다. 나만 코를 감싸고 피하니 한참 모자란 게 분명하다.
두번째는 말하려는 주제(主題)는 알겠는데 제 주제는 모르는 '얄팍함'이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완장만 차면 이 증상이 나타난다. 이들에게 지나간 시간과 과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만 있다. 이들이 퍼뜨리는 바이러스가 문제 되는 것은 스스로는 못보고 남은 잘 보게되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성할 일을 저지르는 나로서는 캥길 수 밖에 없다.
세번째는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껍데기의 '두터움'이다.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탈피해서 나비가 되려다 나방이 된 경우다. 남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높은 학벌까지 갖췄는데 현실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무심한 척 화려한 문양의 애벌레시절을 회상하고, 초연한 듯 세상사를 얘기하는데 찬찬히 곱씹어보면 결국은 자기 자랑이고 자기 위안이다. 좀체 자신을 드러내질 않고 탁월한 언변까지 갖췄으니 그 두터운 껍데기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내 피부가 민감해서인지 나방의 날개짓에 흩날리는 가루가 가려워 긁게 된다. ㆍ ㆍ ㆍ 고질병으로 평생 안고 가야 할 '사람 알레르기'를 지녔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고결한 향을 지닌 사람들과 흐르는 삶의 강에서 행복이라는 사금을 떠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외롭지않다. 껍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은 못 갖췄지만 미세먼지같은 가루에 민감한 피부를 지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