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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05. 2019

나만의 방식 1

독사, 도루코... 학창시절 이후 나 없는 자리에서 암암리에 회자됐다던 내 별명이다. 어느 것 하나 두리뭉실하고 호의적이지 않다.
당시 60키로에 28사이즈 바지를 입을만큼 깡파른 몸매에 눈매조차 날카로웠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을 대하는 태도와 근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다.

나는 인테리어를 주업(主業)으로 하는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환경에 관심을 뒀고, 건축학 전공자라 친환경디자인과 리모델링에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있다.
대표보다는 소장이란 직함을 좋아하고, 명함에 디자이너란 타이틀을 파고 다닌다. 거기에 감사하게도 가르치는 일까지 더해져 교수라고 불리니 나로선 영광이다.

선생을 천직으로 여기신 선친과 그 형제들 대부분이 교육계에 계셨던 터라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였는데 젊은 시절의 나는 기제사에 브릿지 머리하고 귀걸이 한 채 참석하는 내 항렬에서는 유일무이한 별종으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나 역시 학생들과 같이 배우고 울고 웃게 됐으니 간혹 운명이란 게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게 있어 이 일은 직업이고 특기고 취미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아직 제도와 법률이 미비한 한국에서 지적재산권인 디자인으로 사업적 성패를 보기에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하고 전망조차도 불투명해서다.
'인테리어'라고 하면 '업자'라는 접미사가 붙기 마련이고 그런 취급을 감수하더라도 부당한 이익이라도 취할까봐 의심하는 건축주의 눈초리를 견뎌내야 하니 그리 녹녹한 분야가 아니어서다.

좋아서,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 30년 가까운 세월은 부당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투쟁하고 보편화된 그릇된 상식을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예민한 감각을 벼르고 있어야 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고 발전하는 정보와 기술을 받아들여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경주마처럼 서서 잠이 들지만 언제나 깨어있어야 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건 (특히 나같은 성격과 기질로는...) 진작에 알았다.  10년차에 접어들며 운이 좋아 강남에서 디자인 잘한다는 평판을 듣게 되고 잡지에 내 작품이 계속 실리던 시기에 이미 깨닫고 있었다.
다행인지 조상이 도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주카페에서
"당신 남편은 한 손에는 돈, 또 한 손에는 자존심과 명예를 들고 하나를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돈을 버리는 사람이니 부자되길 바랄 수는 없다"는 절망적(?)인 예언을 듣게 된 시기와도 맞물린다.

그의 마지막 멘트로 위안을 삼았다고 했다.
" 돈을 퍼담기는 하는데 손가락 사이로 다 샙니다. 그런데 주색잡기로 새지는 않고.... 책임감과 타고난 성실함이 있어 가족 굶기는 일은 없이 평안하게는 삽니다"
아쉽지만 복채주고 돌아섰다는데 지금도 그 카페가 있다면 찾아가고 싶을 만큼 용하고 잘맞췄다는 얘기를 하곤한다.

당시에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점쟁이 욕을 해줬다.
"기다려봐 인천 앞바다에 배만 들어오면 호두만한 다이아몬드 반지로 손가락도 못들게 해줄테니까..."
나는 안다. 요즘도 아내는 의뭉스럽게
" 그 배 말이야 언제쯤 인천항에 들어와? 너무 늙어서 들어오면 안되는데..."묻지만
그녀도 알고 있다.
그 배는 안들어올거란 걸.....

그래도 오늘 묻는다해도 나는 호기롭게 대답한다.
"응. 적도쯤 지났다고 연락왔어"

"저번에도 적도라고 했던것 같은데...?"

" (헉 --;;) 아니~ 그때는 적도 근처라고 했지 지금은 이미 지났다고 하는거고..."

기억력이 좋아야한다. 생존하려면...





※ 사진은 최근 마무리한 건물 리모델링 & 인테리어 프로젝트이다.
지상4층 5층 옥탑, 지하1층의 30년 된 건물이었는데 3~4층은 젊은 건축주 가족이 입주할 예정이고 나머지는 임대를 줬다.
건물 외관과 내부의 상태가
워낙 노후되고 주거용도로는 적합한 구조가 아니었는데 그런 난해하고 어려운 작업일 수록 반기고 즐거워한다.
더구나 현재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담보대출까지 더해 어렵사리 마련한 살림집과 노후대비를 겸한 건물이니 허투루 할 수도 없고
비용 또한 최소한을 들여야 하는 난제까지 덤으로 주어졌으니 이 아니 기쁘겠는가(?)
이후 글에서도 연속해서 사진과 설명을 곁들이겠다.

왼쪽 사진은 이전, 오른쪽 사진은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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