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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ug 05. 2019

나만의 방식 2

평소 지랄맞은 성격에 부자(富者)는 꿈도 꾸지 말라는 계시(?)까지 받았으니 이후로도 거칠 것은 없었다.
내 발로 찾아가서 머리 조아리는 영업을 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 일을 준다고 해도 덥석 하겠노라 반긴 적도 없었다.

그나마 이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런저런 연줄과 사연으로 내게 일을 맡겼던 건축주들이 지인이나 가족 중에 관련있는 작업이 있으면 열일 제쳐두고 나를 적극 소개해서다.
" 실력은 있는데 성격은 까질하니 암말 말고 하자는대로 하는 게 더 득이 된다"는 경험칙한 멘트와 함께...

그렇게 '갑'이 나중에 매니아가 되고 영업을 해주는 회사가 되다보니 일감은 많이 없어(많이 들어와도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궁핍하긴 했어도 언제나 당당했고 힘겹지는 않았다.
여건이 열악해서 최고의 자재와 섬세한 디테일을 모두 살릴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디자인과 작업 범위를 원껏 하지못하는 아쉬움은 남더라도 차선을 선택하고 최적을 지향했다는 자부심만큼은 대단했다.



처음 시작했던 회사가 상승일로에서 MF라는 국가적인 재앙으로 문을 닫았다. 한동안 두문불출했는데 협력업체들 입을 통해 내 신상이 퍼져 큰 규모의 회사의 실무총괄격으로 영입됐다.
사장과의 면담에서 내건 조건 중에 하나는 나를 영업을 내보내지말라는 것이었다. 후회할거라고...

시간이 흘러 검증된 실력외에도 나름의 리더쉽과 친화력(사적으로나 직원에게는 더없이 좋은 사람이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안믿기겠지만...)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에 안심을 했는지 어느날 사장이 나를 불러 술접대를 하라고 했다.
싫다고 했더니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VIP인데 한번만 만나라고 했다.

술자리로 나갔다. 이전에 우리회사에 오더를 준 적도 있는 나보다 어린 모 택시회사 2세였다.
그의 단골 술집이라고 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나 역시 그리 말주변이 없는 것도 화제거리가 부족한 사람도 아니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었다.
그런데 양주병이 3,4,...5 쌓여가고 취기가 오르자 그는 시중드는 아가씨와 밴드에게 반말과 욕짓거리를 섞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엇이, 어떤 점이 그를 자극했는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테이블에 놓여진 술과 안주. 그리고 잔들을 쓸어담듯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우장창...쨍그랑" 소리에 일순 모든 사람의 동작은 굳었고, 움악은 멈췄다.
그런데.....
너무도 아무일 없었다는듯 그 술집 종업원들만은 바닥을 치우고 쓸었다. 아가씨들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는듯 어련히 그럴 줄 알았다는듯한 태도였다.

아직 테이블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양주병을 들어 맞은 편에 있던 그에게 집어던졌다.
아마 허리를 펴고 앉았다면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을텐데 미끄러져 비스듬이 누워있었으니 머리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일부러 안맞췄을거다 아마... 기억은 가물하지만) 게슴츠레하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야 이 ㅆㅂㄴ아 ㄷㄱㄹ를 쪼개서....%$#&** 어디서...대가리 피도 안마른 게 %&$^..." 죽일듯이 노려보며 바닥에 깨진 병까지 집어들려고 하니 황급히 양팔로 얼굴을 감싼다.
종업원들이 내 양팔을 잡고 뜯어말렸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월급쟁이라 할 수없이 나왔다만 밖에서 만나면 너는..."
그리고서 "아버지 믿고 까불지말고 살아라... 오래 살고 싶으면...조심해서" 뭐 대충 그런 멘트를 날리고 나왔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사장이 찾았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 회사 회장한테서 아침일찍 전화를 받았단다. 자초지종을 말하고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게 저 내보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처음부터...."





※ 내가 작업을 맡아서 해주는데는(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몇가지 원칙이 있다.
첫번째는 건축주가 내 면접(?)을 통과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할 자세가 갖춰져있는데 건축주가 돈 자랑이나 하고, 갑질이 몸에 배였거나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꼴을 못본다.
한마디로 사람됨됨이만 좋으면 한푼 남지 않고도,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마다하지 않고 해왔다.
반면에 아무리 큰 프로젝트고 이윤이 보장된다하더라도 발주하는 담당자나 오너가 재수없으면 그냥 일어서서 나왔다.
나는 의뢰하는 사람이 나와 연이 닿은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자만(?)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것만은 지켜려고 안간힘을 쓰며 최선을 다한다.

이 프로젝트의 건축주는 겸손하고 성실한 직장인이다.
넉넉한 예산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건실하게 준비해왔고 치밀할 만큼 꼼꼼한 성격인데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게다가 전문영역과 지적 가치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드문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내게 미안해했지만 나는 그 태도만으로 상응하는 댓가를 받았다고 여겼다.
제일 좋았던 건 이 건물을 아내를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처럼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 건물 외관은 편안하지만 세련되고 규모있게 다듬고 싶었다.(모두 이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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