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예정에 없었던 사랑하는 지인 3명과 식사를 했습니다. 을밀대에서 언제나처럼 얼음 뺀 양마니 물냉면에 빈대떡을 곁들였습니다.
최근 근황도 묻고, 서로의 관심사를 들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찬 냉면으로 식은 속을 덮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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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잊고있다 생각난 듯 모두에게 묻습니다.
A "산과 바다 어디에 있을 때 더 편안한가요? 저는 산입니다. 산에 오르노라면..."
B "저는 바다에 있을 때입니다. 바다에 있으면..."
C "저는 사막입니다"
A,B,그리고 저(D) "왜..?"
C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거든요. 산의 푸르름도, 바다의 파도소리도 눈이 시리고, 시끄러울 때가 있으니까요"
A,B,D "아..."
A "그럼 D께서는?"
B "형(D)은 섬이지 뭐. 안그래?"
D "그렇잖아도 생각해봤는데 한동안 캠핑에 푹 빠졌을 정도로 산을 편안해하고,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니 바다도 좋아서 뭘 고르나 잠깐 고민했는데 니 말 듣고 보니 산과 바다를 한번에 품은 섬이 맞네"
B "형이 혼자 섬에 여행가는 걸 좋아해서 그럴거라 생각했어"
저는 이 사람들을 무척 좋아하고 가까이 합니다.
이유는 많습니다만, 대화에서 볼 수 있듯 "산과 바다 둘 중 어디?"를 묻는 질문에 '사막'이 튀어나와도, 남이 먼저 '섬'을 예상해주기도하고, 그렇게 대답해도 누구하나 "둘 중 하나!"라며 질문을 상기시키거나 예시된 답이 아니어서 잘못됐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 공감하고 그 생각을 읽고 싶어합니다.
세상에 잘못된 대답은 없습니다. 잘못된 질문만이 존재합니다.
'노론과 소론', '남과 북',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의 선택을 강요한 질곡의 역사는 참담합니다. 우울합니다.
질문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어디 세상이 그런가? 살다보면 다 그렇게 되는거지"라고 하지 마십시요.
당신은 20세기에 머리를 뉘고 몸통을 21세기에 두고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21세기에 머리를 두고 몸통은 20세기에 났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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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들의 대화방에 A가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이 출장으로 다녀 온 두바이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막이 매력적인 이유는 삶의 복잡한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하고 지상의 척박한 토지와 강력한 태양과 인간을 직접 대치시키기 때문이다. 중간에 어떤 가림막이나 변화무쌍한 비구름도 없다. 비유와 은유가 없고 모두 직접적이다. 그런 조건이 삶의 기본전제가 된다면 인간이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의지 두 가지만 선연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조금 더 순화시켜 여행객의 감성으로 말하자면, 도심의 일상에서는 결코 대면할 수 없는 자연상태에 놓이게 된다. 일상에서 가장 먼 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가장 다른 눈으로 들여다 볼 시점을 얻는다. 거리상 먼 곳이 아니라 유사함으로부터의 거리다.
사막은 '풍성한 어머니의 자연' 대신 '가혹한 아버지의 자연'과 대면하게 한다. 시선은 막막하되 마음을 산란시키는 요소가 극도로 제한된다. 삶의 무상함과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함은 인생의 표피가 아니라 뼈다귀를 드러내게 하고 죽음의 징후와 직면시킨다. 그렇기에 역으로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생명감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생하게 확인된다.
살아있음이 더욱 부각된다. 출렁이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렇다. 바다는 나를 압도하고 바다의 압도적인 생명감에 나는 겨우 조응하는 수준이 되어 오그라들거나 무력함을 절감하게 만든다. 바다에 압도되어 나를 망각하게 되지만 사막이나 황야에서는 내가 부각된다. 사막도 압도적인 풍경을 안겨주고 나를 무력하게 하지만 나로 하여금 살아갈 것에 대해 전념하게 하고 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사람들이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