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동생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그는 얼마전 꽤 오랫동안 재직하던 대학을 그만뒀다. 그만두게 될 때도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었고, 잠시 새로운 구상을 하던 기간동안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러던 중에 다른 대학에서 그를 찾았다. 망설이던 그에게 나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할 수 있다고,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교수사회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무슨 확신에서 그랬는지 몰랐다.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셨다. 아마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콩나물 500원어치를 살 수 있다고, 그것으로 우리 다섯 식구의 찬거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런 분이셨다.
동생은 재직하던 대학을 그만둔 후 구상하던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생활비를 조달할까 현실적인 고민을 했었고 그래도 직장생활과 사업을 해 본 나는 재직 중일 때 -그래야 한도금액도 높다는 조언도 했다- 미리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놓기를 권했다. 그때 알았다. 그가 아직 은행거래를 하거나 빚을 지고 살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재직 중에 대출을 해서 꽤 많은 한도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과 그 돈 때문에 - 물론 빚이지만- 한결 홀가분하다고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안다. 설사 그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도 소신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 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하겠지만 일류 대학인 이전 학교를 그만둘 때나 다시 남들이 부러워 할 대학의 교수직으로 복귀하는 것을 주저할 때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그의 복귀를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대학측과의 계약 과정에서도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한참 후가 될 다소 무리한 듯 보이는 재임용조건이나 이전 경력에 비해 낮은 호봉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내가 화를 냈을 따름이다. 그때 교수에게도 호봉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오늘 문자가 온 것이다. 이전 대학에서는 호봉 체계가 1,2,3...으로 오르는데 반해 지금 학교는 3,2,1...순이라는 것을 알게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전보다 그리 낮은 처우는 아니었던 셈이다.
내 일처럼 기뻤다. 문자를 보낸 그의 마음을 읽어서도 그렇지만, 체한 것만 같았던 그 무엇이 시원스레 내려가는 기분이이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 순간, 어떤 상태일 때 행복을 느끼는 걸까?
항상 흔들리고 어떤 때는 충동적이기까지한 나지만, 나는 내 주변이 -나를 둘러 싼 사람들, 환경 등- 안정되고 평안할 때 그제서야 안도하고 느긋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고보면 결혼한 이래 어쩔 수 없이 수차례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언제나 반대했던 건 나였다. 지금도 여전히 온 식구가 귀가해야지 그제서야 잠이 드는 아내를 가끔은 타박하기도 하지만, 실은 바깥에서 술자리를 가질 때도 식구들이 모두 집에 들어온 걸 확인해야지 새벽까지 마셨다. 다분히 이기적인 구석이 있긴하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흔들리기에 가만히 중심을 잡고 있는 무언가가 간절해서 일 수도 있고, 약한 구석이 있어 아무도 모르게 기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내가 주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끼는 사람들이 적은 수로 수렴되고, 환경 역시 그다지 바뀔 가능성이 줄었다. 그것은 느린 선율의 낮은 볼륨의 음악처럼 나를 행복하게 감싸 줄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이 꼭히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는 횟수가 늘어간다. 그 또한 다행이다.
아무튼 짧은 문자 한 통으로 경쾌하게 시작하는 하루다. 누구에게는 사소하지만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