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욕실에 앉아 곰곰 생각해보니 '이거 내 무덤을 파고 있구나'하는 공포가 밀려들면서 뜨거운 데 몸을 담그고 있는데도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여성 페친들의 동향을 검색해봤는데 페절까진 않으시고 아직은 팔장을 끼고 째려보는 중이신 것 같았습니다. 저도 살 길을 모색해야 돼서 원성과 비난을 희석시키고자 여성페친의 환심을 살 수있는 이야기도 곁들여야겠습니다.
저와 결혼하기 전 아내는 두 가지 당부를 했는데 지금까지 어기지 않고 지키고 있는 무지 착한(?) 사내입니다. 연애하던 시기가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 동창인 친구와 함께 암벽등반을 본격적으로 입문하려던 시기와 겹칩니다. 스릴도 느껴지고 막 재미가 붙으려는 참이어서 골목 축대를 암벽삼아 친구와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버티고 올라서는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 역시 애인이 있어 (그 커플 역시 부부가 됐습니다) 같이 어울리며 지나간 학창시절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자연히 저의 범상치 않았던 과거사가 다 나오기 마련이었습니다.
결혼식을 앞둔 어느날 아내가 심각하게 "오빠 다 좋은데... 결혼 후에 두 가지는 안하겠다고 약속해 줘" 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과부가 되기는 싫다면서.... 첫번째. 암벽등반을 그만둘것. 너무 위험해 보임 두번째. 대학시절 중국집 배달하며 탔다던 오토바이. 언젠가는 돈 벌어서 멋진 모터싸이클을 타겠다는 그 꿈을 버릴 것. 이유는 상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암벽 안타고(여행과 캠핑으로 달랩니다), 모터싸이클 군침만 삼키면서 매장에서 구경만 합니다.(외발전동휠로 대신합니다. 질주하다 허공을 나르는 바람에 어깨 나가서 몇 년 고생했습니다만...)
그러고보니 아내를 배려한 착한 일이 또 있었군요. 앞서 저와 제 아내 양가의 일가친척이 무척 많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혼여행 항공편 출발시간을 결혼식 시작부터 1시간30분 뒤로 앞당기게 했습니다. 자연히 결혼식에 이은 우인, 내빈, 친인척 사진촬영이 초급행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마치 불난 호떡집처럼, 연극 공연 중 막간 연출부원들처럼 정신없이... 물론, 저희 둘은 그냥 계속 서 있으면 돼서 상관없었습니다)
- 아... 그 중간에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도 안한 고향 친구들이 헐레벌떡 쫒아와 축하받아야 할 신랑인 제게 온갖 쌍욕을 퍼붓는 패악(?)을 저질렀고(나쁜 놈들인데 제가 무지 착하다보니 참았고, 지금까지 만나줍니다), 서울 직원들 또한 제가 출발했는지 확인하는 부모님 전화를 받고서야 사장인 제 결혼 소식을 알게되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단체로, 그것도 항공편을(9명이나) 끊어 내려오는 공금횡령(?)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역시 너그러운 젊은 사장인 저는 그들을 고소하지 않고, 모든 죄를 용서(?)해줬습니다. -
아무튼 폐백도 10남매의 막내이신 아버지, 6남매의 넷째이신 어머니, 거기에 그와 맞먹는 처가의 많은 어르신들이 있으셔서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을텐데 제가 "항공기 출발시간이 촉박해서 친가, 처가 어르신 한꺼번에..." 라는 핑계를 대서 대추를 받았는지 밤을 몇 알 던졌는지 내가 그녀를 업었는지 그녀가 나를 목말 태웠는지 기억도 안나게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혼을 빼놓으며 후다닥 치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피로연장인 인근 갈비탕집을 갔는데 (물론 저희 둘은 반도 못먹은 상태였습니다) 정식대로라면 찾아오신 친인척(앞서 엄청 많다고...), 내빈들 테이블만 찾아서 인사드려도 족히 서너시간 걸렸을텐데 제가 막무가내로 아내 손을 붙들고(그래서는 예법에 어긋난다는 양가부모님의 거센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당 출입구에서 홀을 바라보며 목청껏 "오늘 저희 결혼식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먹고 잘 살겠습니다. 그럼 비행기 출발시간이 몇 분 안남아서 갑니다" 소리지르고서 바로 둘이서 배낭매고 도망치듯 공항으로 달렸습니다.
현대판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1967)'의 한 장면처럼요...
이윽고 공항에서 딱딱하게 굳은 올림머리의 핀도 못뽑고 커플 면티에 커플 청바지를 입은 어색한 차림인 아내는 "오빠... 저희 이래도 돼요?"라면 무척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