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4

by 문성훈

1997년은 한국 경제에 IMF라는 엄청난 태풍이 불어닥친 직전 해입니다.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까지 바닷가 마을은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듯, 태풍의 중심 하늘이 청명하듯 그 해 9월은 그야말로 "여행하기 딱 좋은 시기네..."였습니다. 원화가치 상승으로 해외여행을 싸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더라도 평소부터 신혼여행만큼은 배낭여행을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던 터였습니다.

마침 아내의 전 직장이 항공사였기에 가장 싼 항공편(케세이퍼시픽항공인가 하는...)과 유로패스를 미리 끊어놓게 해서 스위스로 떠났습니다.
숙소는 한 군데도 잡아놓지 않은 그야말로 9박10일간의 자유여행이고, 무대뽀 배낭여행이었습니다.

홍콩에서,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며(아무래도 제일 싼 티켓이라 경유를 해야했습니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습니다. 취리히에서 루체른, 인터라켄, 융프라우에 올랐다가 슈피츠, 베르겐...등등.을 거쳐 이탈리아로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대부분의 밤은 야간기차 침대칸에서 배낭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거나(배낭도둑들이 설쳐서..... 실제로 기차 화장실에 도난당한 여행객 배낭이 풀어헤져져 있는 것도 봤습니다) 유스호스텔의 2층 침대에서 아래,위층으로 따로 잤습니다.

막 굴러먹던(?) 저와는 달리 곱게 자란 아내는 세계 각국 여행객들이 한 방에서 함께 자는 것도 꺼림칙한데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남녀공용이다보니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자는 야밤을 이용해서 아내가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를 하면 저는 그 입구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경계근무를 서야 했습니다.(한국 남자들 군대 갔다 온 경험이 이럴 때 무척 유용하더군요)
그래도 우리는 고생을 추억으로 여기고, 부족한 잠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젊었습니다.

테마파크에 풀어놓은 아이처럼 매일매일 신이 났고 흐르는 시간이 아쉬웠습니다. 기차나 버스로 촌음을 아끼며 움직이다보니 예정에도 없던 작은 마을에서 민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위스 어느 마을 작은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을 주문했습니다(Rib과 구운 통감자가 함께 나오는... )
경비를 아끼느라 1인분만 시켰습니다. 엄청 큰 갈비(Rib)와 감자가 나왔습니다(원래 스위스사람들 뱃골이 크거나, 꾀죄죄한 동양인 남녀여행객의 몰골이 안쓰러워 많이 준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마저도 절반 정도를 남겨 당당하게(?) 싸달라고 해서(다음날 먹을 아침식사로...) 민박을 찾아 나섰습니다.

맘씨 좋게 생긴 할머니 집 2층방을 얻었는데 시집 간 딸이 쓰던 방이라고 했습니다. 오래만에 제대로 된 침대와 욕실이 딸린 아늑한 방을 며칠만에 처음 쓰게 된 겁니다.(그것도 높은 스위스물가에 비하면 아주 싼 값에...)
우리는 씻자 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 떨어지지 않았겠습니까?(간만에 들어간 침대 안이 너무 포근하기도 했거니와 갑자기 피곤이 밀려와서 그만.... 그렇게 신혼여행 중 뜨거운(?) 허니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 무참히 날려버렸습니다)

물론 우리 둘은 어젯밤 식당에서 호일로 잘 싸가지고 온 남은 갈비와 감자로 호화로운(?) 침대에서의 아침식사를 즐겼습니다.(호텔 룸서비스 부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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