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이야기-도(道) - 1

by 문성훈

(※ Warning: 19금/ 노약자와 심장이 약한 여성은 읽지 마시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지만 트럭이 들락거려서인지 도로 폭은 넓었다.

이방인인 내가 마을 지붕들이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이렇게 넓은 공터가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는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높은 층고를 가진 공장 건물같기도, 축사같기도하다.
아이보리 벽체와 파란 지붕의 조립식 패널로 지어진 깔끔한 외관에 화물차 두대는 넉넉히 들락거릴 만한 넓은 문이 인상적이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이 곳이 고향인 친구를 따라 이 마을을 찾아온 건 하루 전이다. 그리고 오늘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친구와 여기에 온 것이다.
어딜 가나 시골 인심은 후해서 어제는 친구 어머님이 차려준 신선한 채소 쌈과 불고기, 우물물을 길어 담궜다는 깔끔한 물김치에 갓김치, 가죽나물까지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저녁밥상을 받은 터라 시장기가 돌기에는 아직 멀었는데도 굳이 귀한 걸 먹여주겠다고 제 형이 근무한다는 이 곳까지 한참을 걸어온 것이다.

우리는 그 건물 안 한 귀퉁이에서 족히 100마리는 돼보이는 소들을 보고 있다.
몇 사람의 장정이 이리 저리 소들을 끌고 밀치기도 하면서 병사들이 사열받듯 일렬 횡대로 도열을 시켰다.
친구가 누군가를 보고 손을 흔든다. 그들 중 한 명이 녀석의 형이다.

이윽고 반대편 작은 문께에서 허름한 복장의 노인네가 뒷짐을 지고 허위적 훠이적 걸어온다. 깡마른 체구가 작은 키를 더 작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첫번째 소 앞에 선 노인네가 뒷주머니에 있던 뭔가를 꺼냈는데 작은 망치같다.
흔히 보던 망치와 다른 점은 망치 머리 뾰족했고 못을 뽑는 노루발이 없다는 정도랄까.
그 순간만큼은 우는 소도 없었고, 들고나는 차들도 동작을 멈췄다. 조금 전 부산했던 건물 안이 영화 속 한장면 처럼 나와 친구만 움직이고 주변 인물과 소들은 사진처럼 그대로 박혀있는 것만 같다.

아니 우리 둘 외에 그 노인네도 아주 천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왼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소의 끔뻑이는 오른쪽 눈을 감싸듯 가린다 싶더니 오른손을 들어 그 작은 망치로 소의 미간 위 어디쯤을 짧게, 하지만 빠르게 때렸다.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지만 리드미컬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바람을 가르는듯한 그 동작을 어디선가 본 듯도 했다. 살풀이에선가 승무에서 였던가.

"땅" 소리가 난듯도 싶은데 아닐 수도 있다. 권투선수가 짧게 끊어 친 잽에 거구의 상대선수가 넘어지듯 소가 그대도 장작 넘어지듯 쓰러진다.
벌목할 때 마지막 장면처럼 소가 쓰러져 땅에 닿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둘.. 셋... 그 노인네는 군대에서 복장 검사를 하던 챙을 깊숙히 눌러 쓴 그 조교처럼 옆으로 떡 한걸음씩만 옮겨가며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소가 넘어질 때마다 다운된 선수를 살피는 심판처럼 장정이 한 명씩 달려들어 쓰러진 소의 망치가 닿은 그 부위에 철사처럼 가는 긴 꼬챙이를 깊숙히 쑤셨다 비틀면서 빼냈다. 그때마다 소의 네 다리가 부르르 떨다 멈췄다.

처음 소들이 도열해 서 있던 자리 그대로에 소들이 차례차례 누웠다.
신음도 비명소리도 없는 무성영화시대 서부극의 클라이막스를 보는 것 같다.
다만 악당 대신 소들이 쓰러져 갈 뿐이다. 악당이 소가 될 수 없듯 소는 악당이 아닐 뿐이다.

그렇다. 여기는 소 도축장이다.
그 노인네는 그 도축장의 가장 어르신인 셈이다. 백정이란 말이 불경스럽기만 한 마스터였고 차라리 도인처럼도 보였다.
소의 눈을 가리는 듯한 그 왼손 동작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한걸음 한 걸음 절도있게 옆으로 옮기는 그 발걸음은 무겁지도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도 않았다. 적어도 소와는 교감을 하는 듯 울거나 머리를 흔드는 일은 없었다.
둘 다 담담하고 차분했다. 죽음을 두고 마주하는 그 둘 간에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 있었다는 확신은 느낌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마지막 소까지 넘어지자 노인네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망치를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나타났던 그 문으로 들어 올때와 마찬가지로 뒷짐을 지고 사라져갔다. 후줄근한 셔츠자락이 도포처럼 펄럭이는 걸 본 것도 같다. 영화 속 주인공이 뒷모습만 남기며 작아져가는 마지막 장면처럼....

친구가 먹여주겠다던 귀한 음식은 소의 골수였다. 희끄므레한 것이 껍질을 벗겨 놓은 꼼장어같았다. 막 잡은 소에게서 얻은 것이어여만 그대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소 한 마리에서도 아주 작은 양이 나온다고 했다. 고소했다.
그래도 내 머릿 속엔 노인네와 소 그리고 영화인지 현실인지 여전히 혼돈스러운 필림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중에 퇴근한 친구 형이 그랬다. 아주 드물게 망치를 맞고도 살아나거나 비껴맞고 야산으로 도망친 소가 있었다는데 그 소는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도축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전히 소의 눈을 가리던 노인네의 그 핏줄이 불거진 그을린 왼손등이 그리고 노인을 바라보던 소의 천진한 눈망울이 잊혀지질 않았다.

그리고 다음해 나는 군 입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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