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이 말썽이다. 사소한 문제라 덮고 지냈는데 속옷 뒷덜미에 박음질 된 라벨처럼 걸리적거렸다. 정해놓은 시간에 화면이 꺼지거나 절전모드에 들어가면 도무지 깨어나질 않는다.
처음에는 유선상으로 A/S를 받았다. 원격으로 제것인냥 다룬다. 이리저리 부산한 마우스커서를 보면서 섬뜩했다. '해킹이 이런거겠구나' 결론은 무슨 문제인지 알수 없으니 시스템 복구를 하거나 출장서비스를 신청하란다. 당장 급하지도 않고해서 절전모드를 끄고 몇 달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주말 저녁에 직접 시스템복구를 시도했는데, 어디서 잘못됐는지 '진행중'이란 문구만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급한 마음에 다음날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서 A/S를 받고 테스트를 했는데 이상이 없다.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써보니 다시 똑같은 증세가 나타나는게 아닌가? 이번엔 출장서비스를 받았다. 이리저리 해보더니 메인보드를 교체해야겠단다. 센터에 신청해서 부속을 받은 후에 노트북을 회수하러 오는데 2~3일 뒤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한다.
며칠뒤 목요일 오후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속이 확보되어 회수하러 오겠단다. 내일 가지러 오면 좋겠다고하니 그리되면 다음주 월,화 정도 돌려줄 수 있는데 그 주부터는 지역담당이 바뀌어 차라리 쓰다가 다음주에 그이에게 맡기는게 어떻냐고 한다. 이왕이면 같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고싶었다. 있는 곳을 말해주면 내가 곧장 가겠다고했다. 무척 미안해하면서 약속장소를 알려줬다. 차를 돌렸다.
장소는 대형 아울렛이다. 매장 2층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6시경 도착했다. 직장인은 퇴근할 시간이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를 사서 휴게실로 갔다. 기사분은 먼저 와있었다. 앉자마자
"메인보드 갈아보고도 안되면 윈도우 다시 까는 것까지 다해보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럼 저야 너무 고맙죠.우선 이것 좀 드시고...식사 제때 못챙기시죠?"
"네..." 씨익 웃는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였다. 덕분에 국내외 최신 노트북의 정보(내 것은 외국산이다)도 알게됐고, A/S기사의 애환도 듣게됐다. 월급제가 아니라는 사실. 하루 5~10건 정도를 처리하는데 지역마다 의뢰 건수의 편차가 심해서 담당지역을 바꾼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건을, 한 장소에서 여러 대를 처리하는 지역이 수입도 좋고 기사분들이 선호한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사무실 밀집지역)
"하루 일과를 마치고, 회수한 노트북 수리를 하니 이삼일 걸리는 군요"
"네. 한번에 안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별한 겁니다. 외국은 이렇게 빨리 A/S 못받습니다"
"예?"
미국만 해도 택배로 서비스 보내면 한 두달은 예사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단다. 심지어 미국에서 고장난 노트북을 들고 한국에 와서 수리해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도 여러건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A/S가 빨리 이루어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겁니다"
'그렇구나...' 몰랐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실이다. 이날 우여곡절끝에 노트북A/S는 마무리졌다.
어제 모임에서 이 노트북 수리기(記)를 말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현지사무실 복사기 A/S받은 얘기로 받았다. 약속한 날짜도 매번 어길 뿐더러 기간도 점점 길어져 2~3주 걸린다고 한다. 차라리 새것을 사고 싶은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의료보험에 이어 자부할만한 것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사소해 보이는 영역에서도 내 나라의 자랑거리를 찾아내야겠다. 단점 없는 사람이 없듯 나라도 마찬가지다. 장점을 키워 단점이 보이지않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A/S기사분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