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

by 문성훈

" 한국귀신만해도 넘쳐날텐데 이제는 서양귀신까지 설치는군요 "

"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 이 많은 귀신들이 뭐하나 모르겠습니다. 잡아갈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닌데..."

" 하하하핫 "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아가씨가 지나간다. 홍대 노천 카페는 오늘따라 활기가 넘친다. 밤늦은 시각 퇴근길에 지인과 나눈 대화다.

발렌타인 데이, 할로윈 데이.... 글로벌시대라고는 하지만 영원한 촌놈인 나로서는 왠지 마뜩잖다. 머지않아 추석대신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금요일인데다 10월31일 할로윈 데이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 가사처럼 시월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계절은 잊혀지고 또 잊혀졌으면 하는 날.... 그 날이 저문다.



기념일에 무심하다. 결혼기념일은 물론이고 아내와 아이들의 생일조차 까먹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좋아져 스마트폰 스케줄러란게 생기면서 요즘은 챙기는 편이이지만 그마저도 축하인사를 건네거나 시간이 허락되면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제 우리 식구는 나를 어쩔 수 없는 사람이려니 그러려니하고 봐 넘긴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이질적일 수 밖에 없는 두 집안간의 결합이고 두 이종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사뭇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내와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절충하고 조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종교와 같은 큰 이슈에서부터 양말을 개는 방식과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그러했다.
'생일'에 대한 인식과 이벤트도 그 중 하나다.

장자노릇이 몸에 배여 살다가 결혼해서 '막내'사위가 되고보니 홀가분하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셋이나 되는 동서형님과 처형이 더할 나위없이 좋은 분들이기도 하셨지만 나이 차이가 많다보니(큰처형과 아내는 띠동갑이다) 나를 새로 생긴 막내동생처럼 챙기고 어여삐 봐주셨다.
나 역시 갓 군입대한 이등병처럼 잰걸음으로 불려다니고 막내노릇에 재미가 들려 곰살맞고 싹싹하게 굴어 사랑을 받았다.

신혼이던 어느날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던 둘째 형님에게서 호출이 왔다.
모여서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자신다. 퇴근을 형님댁으로 했다. 도착해서야 둘째형님의 생신인걸 알았다.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처가의 모든 식구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날 난생처음 영화에서나 보던 고깔모자를 써봤으며 폭죽을 터뜨리는 역할까지 맡았다. 케잌을 자르고 생일선물과 축하인사을 건네고 선물상자를 열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크리스마스인줄 알았다.
처가에서는 늘상 해오던 '생일파티'였는데 나만 낯선 이방인이었다.

아침상에 미역국이 오르면 식구중 누군가의 생일인 날이 많았고(내 생일일때도 마찬가지다) 가끔 새 연필통이나 운동화가 생기는 날이면 그제서야 내 생일인 걸 알아채며 자란 나로서는 왠지 안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등에서는 무언가가 스멀거리며 기어올라왔다.
집성촌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촌에 육촌까지 한 고장에 살며 어떤 일이 있어도 명절에는 귀향해야하고, 조상의 제사날 누구라도 빠지면 곧 화제가 되는 집안에서 자랐다. (시집온 지 23년째인 아내지만 아직도 사촌형제들마저 순위를 헷갈려 한다. 선친은 10남매셨는데 그 분들은 자녀를 최소 3남매이상 두셨다. 대부분 5남매~7남매를 두셨다) 그런데 누군가의 생신(환갑, 칠순, 팔순잔치를 제외한...)이라고 해서 모였던 기억은 없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일은 생일일뿐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아내의 집안은 아주 사소한 경사에도 온 가족이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예를 들어 누군가 간단한 수술(가령 맹장수술일지라도)을 받고 퇴원해도 축하파티를 벌였다.

농사를 짓거나 공무원, 선생님이 대부분으로 보수적이고 평범했던 우리 집안에 비해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모두 의사인 집안으로 개방적이고 부유했던 처가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유교적 사고관을 가진 불교신자가 전부이다시피한 우리 집안과 생김새마저 다들 서구적인데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많은 아내의 집안사이에 어떻게 중매가 오갈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아내에게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참으로 중요한 날인게 당연하다. 하지만 결혼하고서 처음 얼마동안은 어색해서 피하다 이제는 나름의 가치관까지 더해진 나로 인해 그녀의 바램대로 되지않는다. 아내나 아이들의 생일이면 축하해주고 되도록 자리를 같이 하려하지만 (그런 면에서 셋은 잘 통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 생일만큼은 축하인사하는 정도로 굳어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케잌과 촛불 끄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때문에 어쩔 수없이 집안 불을 끄고 손뼉치며 생일축하곡을 부르는 고역을 치렀지만(역시 스물거려서...) 아빠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챌 나이가 되고서는 그마저 축하인사를 하는 정도로 그쳐줘서 한편 고맙다.

올해 내 생일 역시 그랬다.
딸은 빨간 하트를 수없이 달린 축하 문자를 보냈고, 아들은 성인 티를 낸다고 '생신'이란 단어를 쓰며 조만간 '한 잔'하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세상이지만 무겁게 걷다 깃털처럼 가볍게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내 생일.
아직 무엇을 축하해야할지 어떤 날로 기억해야 할지 정리가 안돼서 평범한 하루로 흘러가는 게 마음 편하다.

작년까지 sns를 하게되면서 많은 분들에게서 생일 축하인사를 받았었다. 그때마다 처음 참석했던 처가집 생일축하파티가 떠오르며 당황스러웠다.
이제는 방법을 터득했다.
개인정보에서 생일을 매년 한번만 바꾸는 수고를 하면 되는데 모르기도 했거니와 그래서는 안되는 줄로만 알았다(거짓 기재하면 안되는줄...).
덕분에 올해부터는 무사히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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