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로키-1

by 문성훈

지금은 뚜벅이지만 20여년동안 자가용을 이용했다.

그동안 나를 거쳐간 자동차가 프라이드, 스포티지, 그랜드 체로키, 아우디 Q5였는데 지금 아내와 함께 타는 코란도 스포츠까지 첫 정인 프라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SUV다.
직업의 성격상 그리고 무엇보다 내 취향이 강인하고 진취적인 지프를 좋아하는데 주로 도심을 운행하니 SUV로 절충한 결과다.
그 중에 유일하게 중고차로 사서 가장 애착을 가졌고 남에게 넘기지 않고 장례를 치른 자동차가 '체로키'다.

대학 선배가 타던 이미 10년도 넘은 중고차(1992년)를 꽤 오랫동안 공을 들여 인수했는데 각이 진 클래식하면서 듬직한 체구도 마음에 들었거니와 '체로키'란 이름도 왠지 정감이 갔다.

집요하게 갖고 싶었던 이유가 영화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에는 두 가지 중요한 소품이 나오는데 하나는 무인도로 표류한 주인공 척(톰 행크스)이 '윌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로 삼는 배구공이고 또 하나는 비교적 덜 알려져졌지만 보는 순간 나를 사로잡은 자동차 '그랜드 체로키'다.

4년만에 살아 돌아 온 척이 비오는 밤 어쩔 수 없이 이미 재혼한 아내 캘리(헬렌 헌트)를 찾아갔다가 차고에서 자신의 애마였던 이 자동차를 보는 장면을 잊을 수 없고 그때까지도 척을 사랑하던 캘리가 조수석에 탔지만 돌아가라고 하는 척의 대사가 가슴 아팠다.
살아있는 이유 중의 하나였던 화물을 전해주려 끝없어 보이는 길을 달리던 차도 이 차였으며 돌아오는 길 사거리에서 마주친 여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헤어지고 여운이 남는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도 이 차안에서 이루어진다.

첫 장면에서 척을 공항에 태워다 주며 그에게 닥칠 불행의 서막을 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희망을 예감하게 하는 것도 이 차와 함께였다.

척이 타던 똑같은 차종에 컬러도 같거나 비슷했다.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어떤 장소, 무슨 물건이든 추억이 된다는 사실과 진정한 사랑은 남의 불행을 밟고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 준 차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결말도 없는 여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깨달음을 줬다.

높은 배기량을 감당하지 못해 장거리는 자제하면서 단거리 위주로 타고 다녔는데 영화에서처럼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 중앙버스차로 공사 현장을 미처 보지못하고 교통사고를 냈다.
꽤 큰 충돌이었는데 나는 말짱했다. 나를 지켜주고 저만 망가졌다.

차값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노쇠해져 그만 쉬게 해줘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무도 20년이 된 차라고는 믿지 않을만큼 매일같이 세차하고 이상이 없어도 2주마다 정비업체에 들러 관리하던 차였다.
이 차를 가지게 되면서 카오디오에도 심취해서 돈이 생길 때마다 앰프, 스피커, 방음, DSP에 이르기까지 오디오 튜닝을 계속해서 실내에 기천만원을 들인 차이기도 했다.

내 사고 소식에 주변 사람들과 오디오 동호회 사람들까지 상당한 금액을 제시하며 그 상태로 사겠다고 나섰지만 폐차를 시켰다.
왠지 오랫동안 함께 해 가족과 다름없는 늙은 소나 말을 팔아치우는 것만 같았다.
오래돼서 구하기 힘든 자동차 부속과 값비싼 오디오 부속들은 일일이 분해해서 동종의 차를 모는 사람들과 카오디오 동호인들에게 나눠줬다. 장기기증을 한 셈이다. 돈 한 푼 받지않고 게다가 배송료도 내가 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한동안 새 차를 사지않았다. 삼년상을 치를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텀을 두고 새 차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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