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주민 부족 이름을 따서 명명했는데 미국 크라이슬러社의 히트작이 됐다. 또 다른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 포드의 비슷한 차종으로 '익스플로러'가 있다. '익스플로러'는 탐험가란 뜻이다. 진취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차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체로키족은 아메리카대륙에서 두번째로 큰 부족이면서 서구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부족중 하나다. 미 독립전쟁에서는 영국편을 들었지만 이후에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그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술문물의 도입과 발전된 농경기술, 삼권분립 된 정부체계, 그리고 고유의 문자 체계등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오늘날에도 체로키 자치정부가 존재하며, 미 연방 정부도 체로키 정부의 주권, 자치권을 존중하고 있다. 또한 제대로 된 정부가 있는만큼 가장 제도나 체제가 잘 정비 되어있어, 실질적으로 미국 내 원주민 부족들 중에서는 가장 잘 살고 있다.
포레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The Education df Little Tree)이 미 남동부에서 살았던 체로키족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리 순탄하거나 영광스럽지만은 않다. 그들의 땅을 무단 점유하고서 한동안 공생을 모색하는 제스춰를 취하던 미국인들이 마침내 1930년 인디언 이주법을 민들고 인종청소를 시작한다. 지금의 조지아주에 살던 체로키족 영토 주변에 금맥이 발견되면서 골드 러시가 시작되고 백인들이 몰려 들었다. 체로키족은 저항을 했지만 1838년 미국군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이 일꾼 땅과 모든 재산을 두고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이른바 '눈물의 길(Trail of Tears 1938~1938)'이다. 굶주림과 전염병,혹독한 추위속에 1300km를 걸어서 이동해야했다. 그 행렬에서 1만3천명 3분의 1에 달하는 4천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어린 자식과 형제, 부모의 시체를 끌어안고 걷다가 밤이 되면 주검과 함께 잠을 청했다. 미국 군대가 매장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다.
이 고통스러운 여로에서 불리워지던 노래가 기독교 성가로 널리 알려진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의 원곡인 체로키족의 애국가“Native American- Amazing Grace (in Cherokee)”다. 체로키족 언어에는 우리말이 섞여서 들린다 우리 한민족이 캄챠카 반도와 알류산열도를 거쳐 아메리카로 넘어가 정착했다는 설이 유력한 이유다. 일제하에서 우리의 '아리랑'을 일본인이 편곡,개사해 그들의 것으로 만든 것과 같다. 체로키족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땅과 피땀으로 이룬 재산 그리고 그들의 노래마저 빼앗긴 것이다.
유럽 또한 식민지 침탈과 인종청소에 있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라틴아메리카에는 몇백명의 군사로 수십만명의 토착민을 죽이고 약탈한 역사가 새겨져 있다. 콜롬부스이래 1600만명이 인종청소를 당하고 침략자들이 퍼뜨린 홍역과 천연두 더러운 매독에 희생됐다. 1532년 피사로는 페루의 왕을 인질로해서 한 방을 가득채운 황금을 받고서도 약속을 지키지않고 왕을 죽인다. 피사로는 파리 인구가 15만일 때 30만이던 도시 멕시코의 테오티우사칸을 500명으로 침략한 코르테스와 같은 1세대 정복자다. 그들에 의해 페루의 잉카과 멕시코의 아즈텍은 멸망하고 라틴아메리카는 피로 얼룩졌다. 콜롬부스와 피사로, 코르테스는 서구역사에서 '익스플로러'들이다. . 서울 한복판에 성조기가 펄럭인지 오래고 일본과 우호관계를 맺으라는 성화가 빗발친다. 미국이 그들을 대표하는 상품이자 가장 사랑하는 자동차의 이름에 '체로키'와 '익스플로러'를 붙인 이유를 생각하게하는 요즘이다.